[충청신문=대전] 윤지현 기자 =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의식주를 넘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응노 미술관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을 2024 기획전 'Together-세상과 함께 산다는 것'에 담았다.
사회에 대한 반항보다는 세상과 더불어 사는 법을 담은 4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접어든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
기획전의 첫 전시장인 2전시장에서는 두 명의 작가가 소개된다.
사윤택 작가는 회화성에 대한 고민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그는 시대적 변화에서 기인한 회화의 고유한 방법론적 태도에 좌절을 겪으며, 올드미디어의 자기 정체성 발현이 동시대 예술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고민한다. 그는 일상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의식의 문제를 CCTV·블랙박스의 눈을 빌려 표현하며 "관찰하는 행위에 대한 유희나 즐거움이 생겼다. 억지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뭔가를 살핀다는 자의적인 행위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장면과 기억에 대한 회화 작업을 진행했다. 작품을 살피다 보면 그의 어린 시절 해마다 현관 앞에 적혀있던 '입춘대길'이라는 문구,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등 구체적인 기억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정용일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巫)의 초월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희열, 의지, 고통 등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정신성을 가지고 있는 작업,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고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생명력, 낯섦, 두려운, 그리움 등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그는 "낯선 공간에 놓인 경험이 많다"며 자신의 내면적인 이야기를 모아 작품으로 표현했다.
두 번째 전시장인 3전시장에서는 이동욱 작가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동욱 작가의 ‘풍선’ 작업은 27살에 찾아온 공황으로 시작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증에 시달리던 어느 날, 그는 어둠 한편에서 붉은 풍선 하나가 서서히 떠오르는 환영을 보았는데, 그 풍선은 심연으로부터 아주 미약하게 빛나는 작은 빛줄기 같았고, 그를 끌어 올려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풍선은 불안의 표상이자 동시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매개물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틀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렇게 그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던 어떤 존재가 희망을 품게 되는 지점에 집중했다. 이 작가는 "다시 일어나게끔 하는 그 희망 한 지점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개인적인 서사와 사회문화와 역사적 사건이 교차하는 지점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며 "제주 4·3사건의 현장을 찾아가 불 속에서 풍선 즉 희망이 피어나는 것을 표현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마지막 전시장인 4전시장에는 김해숙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 작가는 사진 이미지를 직접 손으로 잘라내는 기법을 이용하여, 도시건물에 비친 다른 건물이나 도시의 이미지 자체를 주제로 작업한다. 그의 ‘도시 거울’ 시리즈는 ‘본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자 고민이다. 똑같은 세상, 얼핏 보면 다를 게 없는 세상을 다시 보고, 새롭게 보고, 그 속에서 놀라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게 곧 '예술'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그들이 곧 '예술가'인 것이다. 그는 "작품은 작가의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주변의 흔한 이미지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안목을 선사한다.
이갑재 이응노 미술관장은 "개관 이래 이응노 미술관은 여러 기획전을 통해 현대미술과 이응노 화백과의 접점을 찾아보는 전시를 다채롭게 기획했다"며 "이번 기획전도 그와 궤를 함께하는 전시로, 이응노 화백과는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성장했으나 이응노 화백과 같이 본인의 삶과 경험을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에 투영하고 심화시켜 온 현대미술 작가들의 흐름을 접할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전시의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면서 작가들을 섭외했다"며 "우리 이응노미술관은 앞으로도 지역 미술계, 작가들과 함께 살아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이달 26일부터 6월 9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