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첫날이었다. 강의실에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성성한 남자 어르신도 한 분 보이고 새댁처럼 앳된 젊은 사람들도 네댓 명, 직장에서 갓 퇴근한 듯 급히 뛰어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가장 먼저 강사님은 수강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며 자신의 이름과 본인을 소개하는 문장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잠시 머뭇머뭇 펜을 들고 망설였다. ‘나를 소개하는 한 문장은 뭐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함부로 펜을 굴릴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외부적으로 드러난 명함 외에는 나를 설명하는 그 어떤 단어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작이었다.
그림책과 인문학의 연관성은 꽤 흥미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자 아이들 시각에 맞춘 그림들이지만 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에게도 꼭 맞는 그림책들이었다. 지난 어느 한 수업에는 기분을 색깔로 나타내는 그림책을 수강생들과 읽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돌아가며 현재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는 색깔은 어떤 색인지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내 기분의 색깔이란…. 기분이 ‘좋다’ 혹은 ‘나쁘다’로 단순명료하게만 드러내던 감정을, 좀 더 세분화시키는 수업이었다. 더불어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것이 짜증이고 걱정이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 자기감정의 주인이 되는 방법도 배웠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저 깊은 어딘가의 내 기분을 살펴보게 된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난 시간에는 이름에 대해 돌아가며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그림책에서 촉발된 물고기 한 마리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긴 이름, 그림책에서는 물고기였지만 그 속에 나를 넣고 생각해 본다면 나는 지금껏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가? 누구나 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얻게 되는 이름. 그 이름이 어느 때엔 나를 홀가분하게도 하지만 또 어느 때엔 부담스럽기도 한 이름. 드디어 인문학이 그림책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에 이 강의를 계기로 점점 나를 찾아가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는 게 바빠 이름에 관심을 가질 새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강의가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게 만들고 상기시키게 한다. 지난주만 해도 그렇다. 나를 부르는 호칭에 대해 노트에 적어보았다. 부모님의 딸이었을 때 뉘 집 자식으로 불렸고, 결혼 후 자연스레 따라붙은 아내, 아이가 태어나고는 엄마가 되었다. 적으려고 드니 꽤 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아이의 엄마’라는 단어에 잠깐 울컥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좋은 엄마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날들이었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이름을 달면서 내게 주어진 무수한 시간을 이 녀석만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성장해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 역시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의 새로운 이름’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채운 것이 있다면 이젠 비워내고 다시 시작해야 할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