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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도시의 얼굴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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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7.09 14: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도시’라는 말에는 세련미와 삭막함이 동시에 녹아 있다.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골목’은 정감이 어린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청주시민, 서울시민으로 부르지만 ‘기껏해야’ 우리는 골목 사람이다. 4개의 시선으로 도심을 누벼 보니 인생의 단위는 도시나 나라가 아니었다. 가게마다 추억을 심고, 거리마다 사연을 입히며 두 발로 누볐던 곳은 언제나 골목이었다.

언젠가 간판도 건물도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 집이지만 ‘이종명 가구 실내장식 소품 판매합니다’라는 선간판에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간 일이 있다. 인적이 드문 평일 오전이라서인지 가게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조명 없이도 실내는 화사했다. 화사한 색으로 꾸며진 가구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고급 가구 가게에서는 왠지 이질감이 느껴질 법한 투박한 가구가 한남동 길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가공부터 그림까지 전부 이종명 디자이너가 수작업으로 작업하는 이 가구들은 대량생산에 획일화된 집안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 준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더 활발하다는데, 크기나 소재, 색상 등을 맞춤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간판을 사인(Sign), 사인보드(Signboard) 또는 광고물, 옥외광고물, 게시물로 표현한다. 이러한 용어들이 사실상 혼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인으로 많이 쓰이는 실정이다. 간판을 표현하는 사인은 아주 늦게서야 영어에 도입되어 1225년까지는 몸짓이나 동작을 의미했고, 13세기 말까지는 깃발 또는 방패에 그려진 십자 표시나 그 밖의 모든 도안을 뜻하게 되었다.

간판의 시초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목로주점에서 사용한 송악(아이비) 나무 간판은 송악 나뭇가지를 묶어 걸어놓고 간판으로 삼은 것인데, 이것은 17세기경까지도 영국의 여관이나 술집에서 사용되었다.

대체로 초기의 간판은 글씨를 쓰지 않고 상품이나 도형으로 표현되었다. 간판은 거리의 얼굴이다. 간판의 크기와 홍보 효과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거리의 간판은 크고 조잡하여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은 건물에 간판이 붙어 있지 않고 간판 속에 건물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간판은 대형화, 현란화의 악순환으로 도시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적된 지 오래다. 또한, 지나치게 ‘많고, 크며 현란한’ 간판은 시민의 정서와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 특히 쾌적성(Amenity)을 저하하고 있다.

종래 정부에서 이루어지던 공권력에 의한 단속, 정비 차원의 간판개선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이에 문화적 관점에서의 분석과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종래의 간판 정책에서 벗어나 문화적 간판-부가가치 증대, 간판 문화운동의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시범사업과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불법, 상업주의, 공권력 간판 패러다임을 민간, 자율, 민관협력 간판 문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식과 제도 개선을 목표로 실행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 타임스스퀘어는 화려한 광고로 세계의 명소가 되었다. 화려한 볼거리가 충만한 광고는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함으로써 단순히 광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된 지 오래다.

울산 중구가 지역 최초로 노후화된 간판을 바람직한 광고 문화 정착과 쾌적한 도시미관 조성을 위해 ‘아름다운 간판 정비 지원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기준이다. 조례에는 혁신도시, 원도심, 태화강 십리대밭 길 등 특정 지역의 광고물 표시는 건축물 및 업소 성격, 주변 환경, 인접한 타 광고물 등을 비교해 형태‧크기‧색상이 조화될 수 있도록 디자인해 설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광고물의 색채는 원색 계열 과다 사용을 억제하고, 특히 검은색과 빨간색의 경우 간판 전체 면적의 50% 이내로 하고 문자는 이에 준용하며, LED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반면, 점멸 방식의 네온사인(직접조명), 동영상, 화면변환 형식의 광고물 표시는 금지한다고 못 박아 아쉬움이 남는다.

광고는 규제가 지나치면 개성을 찾을 수 없다. 규격에 맞게 정비된 간판이 보기에는 좋아도 개성이 없고 오히려 도시의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거리에 따라서 개성 넘치는 간판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어도 울산 중구가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는 되지 못하더라도 광고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도록 거리마다 특색을 갖춘 간판으로 점차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더 합리적일 것이다.

충북 청주시가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간판개선사업’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서원대학교 인근 모충동 서원남로 일원을 대상으로 멋지게 디자인을 개발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선보이고 있다.

청주시는 상당구 영운로 일원과 서원·흥덕구 내수동로 일원 174개 업소의 노후화되고 무질서하게 난립한 간판을 철거하고 업소 특성을 살린 개성 있는 디자인의 간판 202개를 설치하여 호평받았다.

일전 IFEZ(인천경제자유구역) 옥외광고 명소화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평가를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을 찾았다. 대상은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송도 센트럴파크이다. 야간 경관을 강화해 IFEZ의 품격을 높이고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IFEZ 야간 경관 명소화’ 프로젝트다.

글로벌 도시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야간 경관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리옹은 밤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예산의 15%를 야간 경관 사업에 쓰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는 야간 경관을 통해 도시 활성화 및 관광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IFEZ는 넓은 공원과 다양한 형태의 고층 건물 등 우수한 경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야간 경관은 아직 매력적이지 않다. 멀리서 바라보면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화려함을 느낄 수 있지만, 도시 안에 들어가면 지극히 평범하다. 일반 도시 밤 풍경과 다를 바 없다.

IFEZ 야간 경관 명소화 프로젝트가 도시 활력 증진 및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인천시 야간 경관 계획 및 IFEZ 단위 사업을 보완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IFEZ가 단순히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거나 눈요기에 그치는 조명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체험하고 교감할 수 있는 야간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대화형(interactive) 및 체험형 경관 조명 등을 설치하면 좋겠다.

이번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송도 센트럴파크 IFEZ 야간 경관 마스터플랜이 지역경제는 물론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명소의 랜드마크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제 야간조명은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특히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의 비상을 꿈꾸는 청남대 경관 조명의 생태적 변화도 마음속으로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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