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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봄을 타시나요?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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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28 15: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산수유 꽃 아우성이 샛노랗다. 꽃샘추위에 속옷을 껴입었다가 더워서 얼른 벗었다. 봄이 짧아지는가? 며칠 사이 금세 여름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뚜렷했던 사계절이 점점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있다.

점심 먹고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봄을 타시나 봐요.” 커피를 건네는 동료의 목소리가 꿈결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봄을 탄다? 입맛이 없어지거나 몸이 나른해지는 증상, 봄기운 때문에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여 기분이 들뜨는 것. 나는 둘 다 해당하나 보다. 밖은 화창한데, 마냥 외롭고 허전하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그냥 산 너머 들판 지나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

계절을 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봄을 타고, 여름을 타고, 가을을 탄다. 더위를 타고, 추위를 탄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덤덤하거나 유별나거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탄다’는 말의 기본형은 ‘타다’다. 여러 의미를 가진 다의어로 쓰인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용례가 참 다양하다.

버스를 타다/노선을 갈아타다. 비행기를 타다/비행기를 태우다. 촛불이 타다/열정을 불태우다. 가마를 타다/꽃가마를 태우다. 줄을 타다/줄타기를 하다. 말에 올라타다/호랑이 등을 타다. 얼굴이 타다/피부를 태우다. 저녁노을이 붉게 타다/영산홍 꽃이 붉게 타다. 상을 타다/계를 타다. 순번을 타다. 복을 타고나다/끼를 타고나다. 한 배를 타다/연락선을 타다. 애타다/애간장을 태우다. 입소문을 타다/매스컴을 타다. 흐름을 타다/급물살을 타다. 때 타다/부정 타다. 물건이 손을 타다/강아지가 손을 타다. 박을 타다. 거문고를 타다. 부끄러움을 타다/수줍음을 타다/노여움을 타다/간지럼을 태우다. 그네를 타다/미끄럼을 타다. 설탕을 타다/물을 타다/물 타기 전법. 틈타다.

‘썸타다’는 신조어도 있다. 영어 Something의 ‘썸’과 ‘타다’의 결합이다. 썸남 썸녀, 가벼운 만남을 일컫는다. 진정성이 없는 것 같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풍속도다.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 다포세대라는 자조어가 슬프다.아예 하지 않으면, 좌절도 없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 꿈, 희망, 모든 것을 무한대로 포기한 세대. 많은 것들이 가벼워지고 있다. 정신줄도 가벼워지고, 생명줄도 가벼워지고 있다. TV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이 부담스럽다. 나는 화장하지 아니한 얼굴이 예쁘다.

봄이 무르익고 있는데,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하다. 부정한 기운이 충돌하는 땅, 정의와 평화의 봄은 아직 멀다.

탈 것도 많고 태울 것도 많다. 적당히 타는 것은 괜찮다. 적당히 태우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탈 것은 골라 타고, 타지 말아야 할 것은 넘보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욕망은 부조화 덩어리다. 벚꽃이 흐드러지는데, 감옥에 갇힌 이들은 어떻게 이 봄을 타고 있을까? 죄 짓지 말 일이다.

누군가는 봄을 타는 것은 사치라고 한다. “봄을 탈 겨를이 어디 있느냐?”는 친구가 부럽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틈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리오. 대부분 사람들은 엉뚱한 일에 겨를이 없다. 어쩌지 못하고 속절없이 매어 산다. 반복되는 짜증은 체질을 산성으로 변화시킨다.

내가 봄을 타는 것인지, 봄이 나를 태우는 것인지 싱숭생숭하다. 커피 향기를 맡으며, 또 창밖을 본다. 흐뭇하다. 봄을 탄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부끄러움, 노여움 타지 말자. 기지개를 켜며, 팔을 휘저어본다. 탈 없이 숨 쉴 수 있음이 고맙지 아니한가? 웃자.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다포세대여, 포기하지 마라. 당당하게 여름도 타고, 가을도 타러 가자.

봄, 봄, 봄…. 산 자여, 따르라. 꿈틀대며 봄날은 간다. 봄은 해마다 온다!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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