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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나의 꿈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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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08 16: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인터뷰 요청이 잦은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공연기획이나 예술 행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꼽으라고 하면 굳이 양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쏟아지는 많은 질문 중에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며 “꿈이 무엇이죠?”라는 질문은 필수였다. 그럴 때마다 난 죽은 사람이었다. 꿈 없이 살고 있다. 계획도 없다. 다만,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고 꿈을 꿀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오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무언가 그럴싸한 대답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뽐내고 싶어 만든 대답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여유가 생긴 것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반백년을 넘기며 가끔 꿈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꿈꾸고 살았는가? 진정 꿈이 없었는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평소에 하늘을 바라보고 살지는 못하지만 항상 눈에 보여 왔던 하늘이 있는 것처럼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잊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고교시절, 필자는 군인이 꿈이었다. 방송이 좋았고 그쪽에 재능이 있다고 권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많았지만 정작 가고 싶은 대학은 육군사관학교였다. 비록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았고 남들이 싫어했던 교련시간을 제일 선호하는 별난 학생이었다. 아마도 직업군인으로 평생을 사신 아버지의 영향이었으리라. 꿈의 순위를 정했었다. 첫 번째가 육군사관학교, 두 번째가 신문방송학과. 하지만 꿈은 늘 일정하지가 않다.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심어준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까지도 목표하는 대학과 학과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적도 문제였지만 장교가 될 수 없는 결격 사유가 눈[目]에서 발견되어 사관학교 지망을 포기해야 했고 신문방송학과에 대한 목표가 제대로 서 있질 못했다. 서울 쪽의 나름 명망 있는 대학은 성적에 자신이 없었고 지방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는 매력을 못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을 한 적도 없고 평소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바로 옆 반 친구가 찾아왔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눈웃음만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었고,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던 친구였고, 약간 다리가 불편해서 항상 장우산이나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등하교를 했던 친구였다. 얼굴도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았다. 친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느닷없이 복도로 불려나온 나에게 다짜고짜 "너 대학 어디 갈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형들이 치던 클래식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워 포크송 부르기를 즐겨했고 학교의 합창단과 문화원 소속의 교외 합창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기는 했다. 친구는 1학년 때부터 성악을 공부했는데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질투가 날 정도로 좋다며 성악과를 가란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학교 방송반 활동을 워낙 투철(?)하게 해서 스피커를 통해 나가는 나의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조회 시간에는 전교생이 내 목소리를 강제로 들어야만했다. BGM에 명언 격언, 시를 낭송하며 공부에 임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의 시간을 매일 진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는 다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보문산 중턱에 있다. 당시 학교 아래에는 공터가 많았고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는 꽤 걸어 내려와야 했다. 야간 자습이 끝나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내려갈 때 삼삼오오 또는 혼자 노래를 부르며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떨쳐내곤 했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듯 불렀던 그 노래 소리가 간혹 뒤따라오던 성악가 지망생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어차피 가고자하는 학과를 정했던 것도 아니고 테스트를 받아보자는 데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 친구의 선생님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에 갔다. 실기 시험 봤던 가곡을 그 친구 선생님이 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풍금 반주로만 음악실기 시험을 치렀었기에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하자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부르는 실력도 없었고 듣는 귀도 없었지만 창피함을 느끼며 “사공의 노래”를 불렀다. 듣기 힘든 칭찬으로 추켜 주셨다. 며칠 뒤, 아무것도 모르는 내 귀에도 정말 성악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음치의 여학생을 레슨하며 칭찬일색이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춤추는 고래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엄마 나 성악해서 음대 갈까?”했더니 찰나의 순간에 돌아온 대답이 “미친 놈! 지랄하고 앉았네!”였다. 어머니의 그 반응은 당연했다. 고3 마지막 학기에 음대라니. 그리고 레슨비 때문에 돈 덩어리들이라고 듣는 음대 지망생이라니.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도 어불성설이었다. 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레슨 받을 돈도, 선생도 없었다. 집에서 부르던 포크송은 사라졌고 아침 점심 저녁에 학교 음악실 피아노는 나의 소유였다. 손가락 하나로 건반을 두드리며 음정을 익히기 시작했고 나를 끌어들인 친구를 최초의 스승으로 삼았다.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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