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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오래된 인연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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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26 17: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가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해서 라벤더가 한창인 홋카이도를 선택해서 떠났다. 3박 5일의 일정이었는데 패키지여행이 다 그렇듯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방학이어서인지 가족동반으로 여행을 온 팀이 많았다. 그중에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한 팀이 있었는데 젊은 총각과 품위 있는 어머니였다. 같이 간 친구는 사춘기의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그 커플에게 눈길을 주었다. 아들들도 다정했으면 좋겠는데 사춘기라 까칠하다면서 잘생기고 어머니에게 너무나 잘하는 아들을 예쁘게 보고 말을 걸더니 호구조사를 해왔다. 친구는 총각이 직업도 전문직이며 믿음직스러우니 그냥 놓치기 아깝다며 자꾸만 우리 큰애와 엮으려고 하였다. 그 다음날도 애인이 없다는 정보를 가져오며 만나게 하자고 했다. 
 
돌아오는 날 공교롭게도 딸아이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주말이면 서울로 학원을 다니던 큰애가 엄마하고 같이 내려가겠다고 공항으로 마중 나온다는 연락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큰 아이한테는 말을 하지 말고 공항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그 총각과 어머니도 그러자고 했다. 공항에서 식사 후 호감을 보인 총각은 친구를 통해 딸아이 연락처를 받아갔다. 총각은 되짚어 괌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서 다녀와 큰애한테 연락을 한다고 했단다. 큰애가 너무 예쁘고 나이 차이도 있다고 자신 없어 하는 것을 “용기 있는 자 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했다면서 친구는 마치 중매쟁이라도 된 듯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다. 나중에 큰애한테 미안해서, 사실은 이리저리 해서 너도 모르는 사이 선을 보게 되었다고 했더니 쿨하게 “괌에서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보네” 하고 지나갔다. 
 
지난주에는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다. 수필작가로 활동한 지 20여년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 앞에서 어쭙잖은 실력으로 인문학을 강의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많이 긴장이 되었다. 오랫동안 문학 소모임 활동부터 해 왔던 터라 친한 문우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마음의 부담을 안고 이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지를 얘기했다. 그러자 다들 참여해서 함께 있어 주겠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자 이런 저런 일이 있어 오지 못한다는 문자들을 보내왔다. ‘화창한 가을날, 게다가 토요일 오후이니 약속들이 왜 없겠는가? 서운해 하지 말자, 그럴 수 있다’ 스스로 납득하면서 도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강의를 듣겠다고 온 사람들을 보고 인생의 한 획을 긋고 지나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내 강의를 듣겠다고 온 이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 중 협회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중 단 한 명도 내가 오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꼭 오리라 꼽아보았던 사람들도 아니었고, 혹시 올지도 모른다며 기대를 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늘 가볍게 스쳐지나갈 인연으로만, 같은 단체에 소속한, 그래서 만난 인연으로만 생각했던 분들이었다. 그 중 한 분은 예쁜 꽃다발까지 준비해 왔다. 강의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고 갔다. 그 분들이 오지 않았다면 강의실은 썰렁했을 것이다.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내 삶의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삶이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을, 미래에도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힘차게 나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활력 있게 며칠을 보냈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늘 만나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나를 위하여 시간을 할애해준 그런 분들도 오래되고 귀한 인연이었다.
 
어제 문학회 행사가 있어 그 분들을 다시 만났다. 강의료가 입금되어 작은 핸드크림을 포장해 내 마음을 전했다. 앞으로도 그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고 새로운 만남으로 생각하며 한 켜 한 켜 정을 쌓아가려고 한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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