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범칙금 내던 날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8.15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하다. 7만2000원의 범칙금을 내고 나오는 길이다. 어제 출근을 하는데 앞에서 경찰차가 갓길로 차를 대라고 수신호를 했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차를 댔더니 신호 위반이라고 했다. 황색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출근하는 길은 새로 난 우회도로로 한가해서 교통량이 별로 없는 도로이다.
 
이 길을 달리면서 처음으로 신호위반 범칙금을 냈다. 어쩌면 참 잘된 일이다. 늘 마음속으로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제는 신호를 무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뒤 따라 오는 트럭이 있어 통과해야 할 것 같아서 위반을 했다. 7만2000원의 범칙금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 동안 위반한 것을 모두 청산한 기분이어서 후련한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길은 2㎞ 이내에 신호등이 네 개나 있다. 처음 그 길을 달릴 때는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보니 나만 신호등에서 서 있고 나머지 차들은 쌩쌩 달리는 것이었다. 왠지 나도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룸미러로 살핀 뒤에 차가 오지 않거나 마주 오는 차가 없을 때만 슬그머니 신호등을 무시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잇길에서 차가 오지 않으면 힐끗 쳐다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딸과 함께 그 길을 가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빨간불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자 아이가 “엄마, 지금 빨간불이야!”하고 외쳤다. 그 순간의 민망함이란…. “아, 그랬어? 엄마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미처 빨간불인 걸 보지 못했구나”하고 둘러 했다. 그 후론 신호등 앞에 선다.
 
출퇴근을 하면서 다른 차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신호등 앞에서 안쪽 차선의 차가 멈추면 바깥쪽 차선의 차도 멈춰 서고, 덩달아 마주 오는 차 또한 멈춰 섰다. 반면에 한쪽 차선의 차가 멈춰 섰는데 옆 차선의 차가 휭 하니 달려가 버리면 멈춰 섰던 그 차도 머뭇거리다가 빨간불인데도 출발하곤 했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실험하듯 빨간불 앞에서 멈춰 서기도 하고 빨간불을 무시하고 지나쳐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어느 한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서면 같이 멈춰 서고, 무시하고 지나가면 머뭇머뭇거리다가 어김없이 출발하곤 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리고 너무나 한적한 길에 몇 미터 간격으로 신호등을 달아놓는 정부를 비웃으며 내달리고는 했지만 신호를 지키지 않았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이래도 되는가? 라는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나만 그러는 것 아니라는 이유로, 아침 출근 시간이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엔 저녁 모임 늦는다는 이유로 신호등을 무시하며 내 합리화를 시켰다.
 
사람마다 사회적 규범이 엄격하게 작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사회적 규범이 느슨하게 작용하고 사람들이 있으면 갈등하고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사회적 규범을 일깨우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규범이 있지만 그 규범을 꼭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드물고 오히려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내 출근길 횡단보도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지금까지는 무사했지만 사고가 날 확률은 항상 존재하고, 내가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날 확률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신호등 하나도 늘 사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규범이 무시된다면 얼마나 큰 문제들이 일어나겠는가 싶어 다시 깊은 반성을 해 본다.
 
아침 출근길 신호등 앞에 멈춰 서니 옆 운전자도 멈추어 섰다. 그래서 옆 차의 운전자를 보며 그대도 앞으로 내 지킴이가 되어 달라는 의미에서 유리창을 내리고 혼자 웃었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