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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영수‘현대문학’사색하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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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30 16: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 명 수 예촌문화벤처 대표

울주군에 오영수문학관이 개관했다 해서 다녀왔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 아련함이 깃든 가장 서정적인 단편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영수는 외모에서부터 그런 풍모가 느껴진다. 두툼한 안경 속에 비치는 선한 눈, 마르고 기름기가 없는 얼굴과 체형, 소심하고 다분히 사색적인 인상의 작가가 쓴 작품들은 주옥같다. ‘갯마을’이 대표작이지만 ‘수련’과 ‘메아리’라는 단편을 읽어보면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 아니라 무척이나 인간 친화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단편 ‘수련’속으로 들어가 보면, 경기도의 어느 시골마을 낚시터에서 B는 한 인텔리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삶의 압박을 피해 온 암사슴 같은 여자였다. 대학 강사인 B는 한 여름밤의 꿈처럼 여름 한 철 만났다 훌쩍 떠나버린 그녀가 남긴 공간에서 마치 수련몽이 투시된 듯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꿈 일수가 없다. 꿈이어서는 안 된다’고 부정하며 그녀와 만났던 현장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다. 연모의 감정을 심도 있게 그린 소설이다.

오래 전 읽은 책을 더듬으며 그의 문학관을 터벅터벅 찾아갔다. 울주까지 가는 시내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태화강은 맑고 푸르렀다. 언양 천주교회 앞에서 하차하여 10분 정도 걸어가니 문학관이 보였다. 문학관 입구엔 작가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내부에는 그의 문학정신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깔끔하게 전시돼 있었다.

작가는 향토색 짙은 낭만적 작품들을 통해 어려움과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그려냈고, 역사적 비극과 모순된 제도를 통해 인간에 대한 본원적 심성을 탐구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고 리얼리티를 벗어난 것도 아니고, 초월적 낭만으로 경도된 것도 아닌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위무가 두드러진다.

오영수는 ‘현대문학’을 창간하면서 소설은 짧을수록 예술성이 높기에 자신은 단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비치된 그가 생전에 보낸 편지들을 보니 대단한 달필인데다, 그림도 수준급인 진정한 예술가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오로지 난초와 낚시를 즐기는 등 일상이 청결하고 고고한 탓인지 아호도 난계(蘭溪)로 불렸다. 문학관이 개관된 이후 최근 방문객 목록을 살펴보니 인근 지역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그나마 아직은 몇 명 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많은 작품들은 서민적 애환과 토속적인 일화를 담은 스토리가 주류지만, 단편 ‘메아리’에는 자연주의적인 면이 작품 면면에 아로새겨진 것을 보면, 인간의 전원회귀의 꿈은 본능이고 사람이 가진 순수한 측면이라는 점을 생동감 있고 목가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이 단편은 자연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시관(詩觀)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두더지가 땅밖에 나오면 죽게 마련이라는 말을 하며 밀가루 두 부대와 씨감자 반말을 이고 지리산 끝자락으로 삶의 터전을 찾아 들어가는 부부의 모습 뒤로 노을이 길게 꼬리를 끌고 오롯이 둘을 비춘다. 수년 후 산청 계곡물에 몸을 담근 도톰하게 살이 붙은 부부의 육체는, 도시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들어간 두메산골 그곳이 바로 천상의 낙원이라는 것을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다.

작가 오영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빛 바랜 인물인지도 모르고, 그의 문학세계도 요즘 문학과 견주면 아련한 추억 정도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꿈을 꾸던 소년 시절에 하늘에서 보던 작은 조각 구름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소년 시절에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처럼 아름답고 마음을 뛰게 만든 것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순수함일 것이다. 오영수 문학을 비롯한 당시 근대 문학 작가들이 부르짖던 바로 인간다운 지극히 인간다운 삶이 우리의 꿈이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외적인 이슈를 크게 키우는 것이 삶이자 목표가 되었다. 자연히 내적인 삶을 일구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온 힘을 소진할 정도로 날마다 내달리는 우리 현대인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고요한 소리에는 도무지 귀를 기울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영악하고 능숙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명확히 모른채, 모든 것을 물질과 능력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제 이런 쾌쾌한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너무나 만연돼 있는 실용주의에서 잠깐 벗어나, 겸손하게 자신을 맡겨야 하지 않을 까 싶다. 원래 어린 시절 가졌던 그런 순수함을 찾기 위해서라도 내적 인격을 연마하고 심오한 깊이에 도달한 사람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찾고 느껴야 할 것이다.

한 해가 지나가고 다시 새해가 시작되는 이 시간이, 삶을 사색하는 의미있는 길목이 되기를 바라면서 낡은 책을 다시 읽어본다.

강 명 수 예촌문화벤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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