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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 <83>

6부. 화친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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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29 18: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2월 21일에 후금 사자 유해가 강화도 연미정에 도착했다. 그를 접대하는 대신이 지난번에 맺은 화친의 국서를 그가 되돌려 가져온 이유를 인조에게 알렸다. 지난번에 맺은 화친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가 기재되어 있어 후금의 이왕자(二王子)가 화를 내어 화친의 맹약이 그르쳐져서 후금군이 기한 내에 철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화친을 맹약하는 국서에는 명의 연호 천계를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유해가 보낸 후금의 국서에도 지난번 맺은 화친 맹약의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가 기재되어 있어 후금의 한황(汗皇)에게 보낼 수 없었으므로 이번의 화친을 맹약하는 국서에는 천계(天啓)를 기재하지 말라고 하였다. 만약 천계를 도로 쓴다면 왕의 동생으로 후금군에 인질로 가 있는 원창군 이구를 돌려보내고 화친을 하지 않고 철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후금 사자 유해와 화친을 맹약하는 후금의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에 대하여 인조는 대신들과 의논하였다. 인조는 회의 전부터 국가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고 이번 화친을 맹약하는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이때 윤방과 오윤겸이 말하기를 당시의 시국을 “한강과 임진강 두곳에 군량이 이미 고갈되었으니, 10일이 지나면 반드시 스스로 무너지는 걱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라는 위기 상황을 말하였다.

그런데도 오윤겸은 “이번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를 빼면 강상(綱常)를 말살하려는 것이니,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반대 주장을 하였다.

김류는 명의 연호 천계를 사용하지 않아도 강상(綱常)을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론하였다. 김류는 “국가의 존망이 여기에서 판가름나는데 신은 그것이 대의에 해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임진(臨陣)의 군사가 이미 무너져 흩어질 형세에 있습니다”라면서 명의 연호 천계를 빼서 국서를 작성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말하였다.

영상 윤방, 원훈(元勳) 이귀와 김류는 화친을 맹약하는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를 빼자고 주장하였다.

인조는 “영상과 두 원훈의 뜻이 이와 같으니 미땅히 이에 의하여 게첩을 만들어야 하겠다. 대의에 있어서는 나라가 망하더라도 결코 따를 수 없지만, 지금 이 게첩에 대해서는 억지로 다투면서 국가를 위망하게 만드는 일을 자초할 것은 없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번 화친을 맹약하는 국서에 명의 연호 천계를 빼서 작성하자고 결정했다.

2월 23일 조선에서는 후금에 화친을 다시 말하고 명의 연호 천계를 쓰지 않은 게첩(揭帖)을 국서로 보냈다.

“두 차인(差人) 편에 서찰을 받으니 매우 위로됩니다. 화친하는 일은 이미 정당하게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마땅히 각각 맹약을 지켜 배반하지 말고, 피차의 백성들로 하여금 함께 안락을 누리게 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신하로 2백여 년 동안 황조(皇朝)를 섬겼으므로 받은 은혜가 깊고도 중하니 의리상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전일의 서찰에 이미 이 뜻을 다 말하였으므로 지금은 다른 말을 하지 않겠으니, 귀국은 양해하십시오. 연호를 쓰지 않는 것은 게첩의 서식을 따른 것입니다.”

2월 24일에 유해가 화친을 맹세하는 글을 요구하자 화친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글을 보냈다.

2월 28일에 후금에서 조선의 임금인 인조가 화친을 말하면서도 화친하고 싶지 않은 것이므로 화친을 맹약하는 의식을 조속히 거행하자는 국서를 보내왔다.

한편으로는 조선이 전투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금군과 승부를 겨루고자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후금군에 왕제로 인질로 와 있는 원창군 이구를 보내고 난 뒤 날짜를 정하여 양국이 일전을 겨루고 난 뒤 맹약하는 의식을 거행해도 될 것이라면서 위협을 가하였다.

조선의 임금인 인조가 곧바로 화친하고 싶다면 속히 화친을 맹세하는 의식을 거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금나라의 이왕자(二王子)는 조선 국왕 휘하에 글을 보냅니다. 화친의 우호를 체결함은 두 나라의 소원인데 맹세가 없으면 어떻게 성실성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귀국 왕이 고집하여 지체시키면서 맹세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화친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화친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근일 무기가 준비되고 사졸들이 훈련되어 한 번 싸워 승부를 겨루고 싶어하는 줄을 모르겠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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