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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81>

6부. 화친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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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27 17: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인조가 있는 행재소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했다. 결국 명나라와의 단교는 영의정 윤방의 의견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금을 형의 나라로 섬기는 문제는 이정구의 의견에 따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2월 5일 조정에서는 강인을 화답사로 보냈다. 강인은 강홍립의 숙부인데 야인(野人)이었다. 그를 가짜 형조판서로 만들어 화답사로 보낸 것이다.

화답서에서 인조는 두 나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와 갑작스런 침입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은의를 늘어놓은 뒤 이렇게 이었다.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지내는 데는 본디 마땅한 방도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귀국과 화친함은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이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지 않음은 큰 나라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은 함께 시행해도 서로 어긋남이 없습니다. 오직 제각기 나라를 지키면서 양쪽이 자기 도리를 다하고 서로 안락하게 지내며 대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간절한 소원이면서 하늘도 기뻐할 일이니 귀국은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글의 내용이 뻣뻣한 편이고 더구나 끝에다 명나라 연호인 천계(天啓)를 썼다. 상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답서였다. 후금군 진영에 사자로 간 강인 등이 2월 21일에 후금의 이(二) 왕자가 조선 측이 보낸 국서에 명나라 연호인 천계를 썼다고 하여 되돌려 주자 자신들이 용서를 빌었지만 안 되었다고 조정에 보고했다.

강화를 놓고는 국내외적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사림 출신의 벼슬아치들은 이귀와 최명길이 화의를 주장해 대의와 나라를 그르쳤다고 탄핵했으며, 장만이 임진강 요새를 버리고 달아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소동을 벌였다.

2월 7일에 또 도체찰사 장만이 조정의 명에 따라 1월 25일 후금 진영에 국서를 가지고 갔던 강홍립의 아들 강숙과 박난영의 아들 박립이 후금의 국서를 가져왔다. 후금은 조선이 후금군을 방어하지 못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전투태세를 강화하고 있어 화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다. 조선이 보낸 국서에 명(明)의 천계(天啓) 연호를 사용하는 처사로 보아 명과 기존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므로 서울을 점령하여 일 년 간 농사를 지으며 주둔하면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후금의 국서를 보고 인조는 후금과의 화친이 어렵게 됐다고 여겨 군사를 독촉하고 강도를 지킬 것을 지시했다.

2월 8일 후금군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서울 도성을 향해 육박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후금이 화친의 국서가 사자를 통해 임금에게 전해졌는데도 윤황(尹煌) 같은 주전론자는 화친을 할 수 없다고 완강히 인조에게 건의하였다. 인조는 지금 화친을 허락한 것은 전쟁을 완화시키려는 계책이라면서 윤황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인이 조정에 보고하기를 후금의 장수가 조선이 명(明)과 단교하면 화친하고 철군할 것이지만, 만약 조선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화가 종사에 닥칠 것이므로 화친 여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위급한 상황을 보고하였다.

2월 10일 인조는 강홍립과 박난영을 접견하여 후금군의 정황을 묻고 화친의 뜻이 진정인가의 의견을 들었다. 강홍립과 박난영은 후금군이 진정으로 화친하려는 뜻이 있으며 회군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김류가 화친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자 강홍립은 저들의 칼날이 어디까지 미칠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강홍립은 후금의 화친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경고하였다.

김류가 박난영에게 “화친을 결정하게 되면 즉시 군사를 퇴각시켜야 되는데 평양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묻자 후금이 누루하치 때부터 ‘조선은 마땅히 강화만 해야 할 뿐이지 우리들의 소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대답했다.

박난영은 화친하면 후금군은 물러간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양사(兩司)가 인조에게 화친을 건의하는 강홍립을 참수하고 후금 사자(使者)를 접대하지 말라고 청하였다.

인조는 강홍립이, “오랫동안 오랑캐에게 있다가 국가를 위하여 나왔으니 정상이 용서해 줄 만한 점이 있는데, 지금 심지어 반신으로까지 지목하니 또한 억울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거절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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