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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80>

6부. 화친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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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23 16: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특히 평안감사 윤훤이 유격전을 수행하겠다는 핑계로 평양성을 빠져 나간 후 평양성 주민들은 전 판관 김준덕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평양성 사수를 결의하고 후금군의 평양성 진입을 봉쇄하기도 했다.

자신과 봉선에서는 고을 유지를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마을과 마을사람들을 지켜내기도 했다. 이렇게 서북지방에서는 자생적인 의병이 결성되어 자전자수의 자위책을 강구했다.

의병의 봉기는 후금군이 조선을 침공한 후 일주일이 지난 1월 19일 인조가 죄기교서를 발표하면서 전 호군 김장생을 양호 호소사, 정현광을 영남 호소사로 위촉하여 의병을 모집하고 근왕하도록 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월 22일 연산 본가에서 인조의 유지를 받은 김장생은 80노구를 이끌고 호남의 각 고을에 격문을 발송하며 의병의 봉기를 호소하였다. 김장생은 기호 지방 유림의 거두로서 그의 호소는 각지의 호응을 불러 일으켜 호남 호서 각지에서 의병이 결성되어 그의 휘하에 운집하였다.

김장생은 전주에 분조하고 있던 세자 일행이 후금군의 평산 진출 소식을 듣고 다시 영해 한산도로 분조하려 하자 적극 만류하면서 군량과 병력을 모집하여 반격을 개시할 태세를 갖추어 나갔다.

3월 3일 화의가 성립-양호 의병의 근왕은 불필요하게 됐고, 왕명에 의해 강화도에 온 김장생과 의병장들은 3월 5일 국왕을 배알하고 의병을 해산하였으며, 인조의 극진한 인사와 치하에 감사하면서 귀향을 하였다.

국방력이 부실한 조선으로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현상이었다.

도체찰사 장만이 조정의 명에 따라 강홍립의 아들 강숙과 박난영의 아들 박립에게 국서를 주어 1월 25일 후금 진영으로 보냈다. 이유는 적병이 퇴각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적정을 탐문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강홍립이 장만에게 답서를 보냈다.

“저의 미련한 목숨은 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양국이 전쟁을 하지 말고 화친만을 바라고 있는데 끝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그간 한결같이 화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면서 죽음을 각오하였으나 이 지경까지 이르렀고 이제 두 집의 아이들이 칼날을 무릅쓰며 국서를 받들고 온 것을 보고는 더욱 꼭 화친하도록 힘쓰겠다는 결심이 굳어집니다. 엎드려 빌건대 영형께서 화친을 찬성하시어 조정의 근심을 덜도록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여기 군사들은 싸움에 깊이 세련되어 그 형세 또한 예리하니, 부질없이 입으로만 이 사람들을 기만하려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특별히 성의 있는 호의로 설득하고 예물을 후하게 주어 속히 이들이 철군하게 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곳에서 가는 사자(使者)에게는 반드시 어전에서 친히 문서를 전달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피차가 화친을 하고자 하는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십시오. 이 역시 아주 긴요한 일이오니 깊이 생각하여 잘 처리하여야 될 것입니다. 집 아이는 한 번 대면하고 금방 돌려보냅니다. 형편상 길게 머물게 할 수 없으니 마음이 살을 에는 듯하나 어찌 하겠습니까?”

장만과 강홍립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에 살았으므로 어려서부터 서로 친밀한 사이였고, 강홍립이 보낸 서신을 보면 아직도 옛 친구의 정의를 믿는 듯하다.

2월 2일에는 후금의 사자가 강도의 갑곶에 이르렀는데 임금에게 보낸 서신은 화친을 하자는 것이었다.

“대금국(大金國) 이왕자(二王子)는 조선 국왕에게 답서를 보냅니다. 두 나라가 화친하고 좋게 지내자는 것은 다 함께 아름다운 일입니다. 귀국이 참으로 화친을 바란다면, 꼭 종전대로 명나라를 섬기지 말고 그들과 왕래를 끊고서 우리가 형이 되고 귀국이 아우가 됩니다. 명나라가 노여워하더라도 우리 이웃 나라가 가까운데 무슨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과연 이 의논과 같이 한다면, 우리 두 나라가 하늘에 고하고 맹세하여 영원히 형제의 나라가 되어 함께 태평을 누릴 것입니다. 일이 완결된 뒤에 상(賞)을 내리는 격식은 귀국의 조처에 달려 있으니, 국사를 담당할 만한 대신을 차출하여 속히 결정하여 일을 완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가는 길에 시간만 지연되어 불편할 터이니, 우리를 신의가 없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후금국의 국서는 부드럽게 표현했으며 위협적 언사가 없었다. 강화조건의 핵심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것과 자기 나라를 형의 나라로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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