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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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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16 17: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글/ 남균우
 
3부. 이괄의 난 
 
이런 능력은 비록 내치에는 여러 분란을 일으켰으나 외교와 국방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던 광해군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광해군 조정의 일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당시는 대북파가 권세를 쥐고 있었는데 이괄은 그 반대편인 서인계열이었다.
 
그 무렵 한쪽에서는 실세한 서인인 이귀, 김유 등이 반정을 도모하고 있었다. 반정 계획의 주모자 김류와 이귀는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이괄과 같은 문무 겸전한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였으므로, 함길도 부임지로 떠나려던 그에게 비밀을 털어 놓고 가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괄 역시 광해군과 간신들의 폭정에 의분을 품고 있었던 터라, 이들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평소 장병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받아온 그는 중견 장교급인 군관 20여명을 어렵지 않게 포섭하여 반정군 부대 편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으며, 또한 인근 고을의 병력을 끌어들인 것도 그의 공로였다. 따라서 이괄은 김류·이귀 등과 함께 1등 공신으로 책정되었어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반정이 성공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이괄은 뒤늦게 동참하였다는 이유로 2등 공신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괄은 크게 불만을 품었다.
 
인조가 즉위한 다음날, 이귀는 왕에게 ‘이괄의 공로가 높고 재능도 있으니 병조판서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하였으나, 반정군의 대장이었다는 명분으로 김류가 그 지위를 차지하고, 이괄에게는 한성부윤(漢城府尹)의 벼슬이 주어졌다. 
 
이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실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으니 거사 당일 밤, 이괄·김자점·이귀 등 주동자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약속한 시간에 홍제원에 모두 집결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당초 반정군 주장(主將)으로 추대된 김류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이귀와 김자점은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시각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침내 즉석에서 이괄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장병들과 함께 대장 이괄에게 군례(軍禮)를 올려 명령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괄은 워낙 상황이 다급한 때이므로 서슴없이 그 직책을 맡기로 결심하고, 군관들을 시켜 미리 준비하였던 삼베 조각 수백 개를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어 우군(友軍)의 식별 표지로 달게 하였다. 그 표지에는 ‘義’자가 쓰여 있었다. 그 무렵, 김류는 반정계획이 누설되었음을 알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집안에 들어앉은 채 금부도사가 체포하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지 얼마 후, 같은 동료인 심기원과 원두표가 달려와서 예정대로 거사할 것을 재촉하였으므로, 김류는 비로소 무장을 갖추고 아들 김경징(金慶徵)과 함께 모화관(慕華館)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곳에는 심기원의 부대만이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김류는 뒤늦게 주장의 권한을 행사하여 홍제원에 집결한 주력부대에 전령을 보내어 모화관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각을 다투어 출동하려던 이괄은 크게 노하여 김류의 이동 명령에 불응하였으나, 이귀·김자점에게 설득을 받고 마침내 김류와 합류하였다. 그래도 이괄은 대장이 군기를 어겼다는 죄목으로 군법에 따라 김류의 목을 베려하였다. 그 역시 동료들의 만류로 미수에 그치고, 이괄은 대장의 권한을 다시 김류에게 양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김류와 이괄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생겼으며, 동료간의 틈도 벌어졌다. 그 결과, 이괄은 극단적인 성격이 빌미가 되어 논공행상의 반열에서 따돌림을 받고 2등 공신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인조는 모화관에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공신과 반정군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호위대장 이귀와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는 제일 상석을 차지하고, 이괄 이하 모든 장수들은 그 아래 좌석에 나뉘어 앉게 되었다. 이괄은 자기 좌석이 김류의 아래로 정해진 데 대해 분노가 치밀어, 아예 멀찌감치 물러나 앉은 채 김류를 노려보았다. 
 
이귀가 좋은 말로 달래어 두 사람을 화해시켰으나, 그의 감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이괄은 사사건건 김류와 맞서 다투었으며, 반정과정에 내응한 이수일(李守一)이 자신보다 높은 공을 인정받아 공조판서에 임명되자, 그 억울함과 원한은 극도에 달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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