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요 아침에] 화내지 않고 미워하지 말고 살아가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5.09.06 17: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송 재 국 청주대인문대학장
얼마 전 TV에서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나?’라는 주제의 방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진행자가 “교수님은 언제 가장 크게 화가 납니까?”라고 묻자, 80이 넘은 노교수는 “나는 화가 안 납니다. 젊었을 땐 남보다 화를 더 잘 냈던 것 같은데, 이 나이가 되니까 화낼 거리가 없어져요. 무언가 잘못하는 일을 보게 되더라도 ‘살다보면 저럴 수도 있는 것이지’하면서 그냥 받아주게 되더라구요”
 
그 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사로서 인격이 높아 화낼 일이 있어도 그렇게 가벼이 無化시키는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비롯한 뭇 凡俗人들에게는 선뜻 수긍되지 않는 말씀 같다. 돌아보면 사방에 온통 한 대 갈겨주고 싶은 미운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판에, 마냥 화를 참기만 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쁜 놈들 욕하는 그 기운마저 없으면, 이 힘겨운 세상 무슨 낙으로 사나?”하면서,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남 탓으로 핑계 대며, 한 가닥 위안을 삼는 게 우리네 삶의 속살인지도 모른다.
 
만인의 스승 공자께서는 ‘미움을 삭여야 하는 지혜’에 대하여도 한 말씀을 남겨 주셨다.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는 대체로 ‘선하고-이쁘고-좋은 ‘나’와 악하고 밉고-나쁜 ‘너’와의 대립’으로 단순화 할 수 있는데, 공자께서는 이런 구도를 ‘올바른 君子’와 ‘못된 小人’으로 구분하고서, 우리들로 하여금 小人이 아닌 진정한 군자 노릇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치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군자이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돈과 권력 좀 있다고 서민들에게 갑질하는 놈들. 주먹 좀 세다고 힘없는 이들 등쳐먹는 깡패들. 똥 묻은 주제에 재 묻은 중생 교화한다고 설쳐대는 자칭 성직자들. 알음알이 지식 몇푼 가지고 세상을 얕잡아보며 천하에 군림하려는 어설픈 소피스트들…. 이렇듯 우리 둘레에 군자보다는 소인들이 넘치는 실정이니, 아무리 나 홀로 점잖은 군자노릇 하려 해도, 할 수 없이 그들과 부대끼며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善한 군자로 살고 싶지만 惡한 소인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마당에서, 군자가 소인 앞에서 갖추어야 하는 태도에 대하여, 공자는 주역에서 ‘遠小人 不惡而嚴’(원소인불오이엄: 소인을 만나면 되도록 그를 멀리하고, 부득이 어울리게 되더라도 구태어 그들을 미워하면서 공연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저 엄격하게 대할 뿐이며, 그들이 뭐라 하든 괜히 덩달아 휘둘리지 말라)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 준다 해도 나에 비하여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것 같은 데, 내 앞에서 우쭐대며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 하는 꼴을 보는 건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군자이고 싶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소인같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는 그 심사가 더욱 역겨워진다. 이렇듯 싫은 사람 때문에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일상에서는 가장 짜증나는 일인 데, 공자는 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미움 자체’(惡)를 그냥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아마도 군자에게 소인이란 미워할 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置之度外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내가 상대하려 하지 않더라도 그가 자꾸 내 앞에서 알짱대며 나의 인내심을 시험해오면, 그냥 넘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설령 나 홀로 의젓한 군자답게 살고자 하여 그들을 투명인간 대하듯 하면, 아마도 소인들은 내 주위를 겹겹이 감싸고서 “너 잘났다”하면서 왕따 시킬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는 책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인간상을 날카롭게 재단한 바 있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들은 자기만이 군자이고, 나 아닌 남들은 모두 소인배로 치부하면서, 어느덧 고독 속에서도 이기적 자만심을 즐기는 데 익숙해져 왔는지도 모른다. 
 
 실로 군자가 되려면 고독마저 승화시키며 혼자서도 잘 놀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남이 세워놓은 기둥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나만의 선하고도 겸손한 자화상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일이야 말로, 숱한 소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버텨낼 수 있는 진정한 군자의 내공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니 옛 성현들이 남긴 문장 속에서, 대학의 경구인 ‘愼獨’(신독: 홀로 있어도 스스로 삼가함)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송 재 국 청주대인문대학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