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 수립 후 결성된 조선가극협의회 산하단체 중 하나가 백조가극단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발전에 이바지한 극단인데, 6·25 전쟁 와중에 공연에 나섰다가 빨치산들에게 붙잡혔다가 전투경찰대 18연대 대대장 차일혁 총경에게 구출된다. 차 총경은 가극단장에게 부탁한다, ‘부대원들을 위해 공연을 해 달라.’ 그리고 감금한 빨치산들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포박을 풀어준다. 전쟁 중에는 아군 적군이 있지만 공연을 보는 데 이데올로기는 필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예술을 통해 피아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멋지지 않은가. 마치 백조를 상징하는 이미지처럼 우아하다. 서양 사람들이 백조를 각별히 아름답게 보고 특별히 여기는 건 다른 뜻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왜냐. 죽음을 인도하는 새가 백조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신화나 종교에서 백조는 영혼을 머나먼 북쪽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죽음이 여신이다. 독일의 일부 지방은 장송할 때 백조의 노래를 부른다. 슈베르트가 죽음을 예감하고 지은 연작 가곡 ‘백조의 노래’도 이 장송곡에서 악상을 얻었다 한다. 북유럽의 샤먼(무당)은 백조의 환각을 보거나 또 백조로 둔갑하여 예언을 한다고 한다.
▷호주 대륙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되면서 ‘백조=흰새’라는 정설은 깨졌다. 검은 백조 하면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내털리 포트먼의 면도날처럼 섬뜩한 연기가 떠오르지만, ‘블랙 스완’은 경제 용어가 돼 있다.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 니콜라스 탈레브의 2007년 베스트셀러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데도 발생해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는 사건을 뜻한다. 제1·2차 세계대전, 9·11테러, 최근의 금융위기 등을 떠올려보면 된다. 세계사를 뒤흔드는 사건은 검은 백조처럼 부지불식간에 온다.
▷백조는 우리말로 고니다. 태풍 고니가 검은 고니로 변하지 않고 흰 고니로 큰 피해 없이 지나가 다행스럽다. 하지만 가을태풍은 이제 시작이다. 한여름을 지난 9월의 바닷물 온도가 가장 높기에 태풍의 에너지도 그만큼 크고, 유독 사납다. 1959년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가며 엄청난 피해를 낸 ‘사라’, 2002년 5조1000억 원의 재산을 쓸어간 ‘루사’가 가을에 왔다. 향후 태풍도 통념을 벗어난 블랙 스완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기상전문가가 많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 또 조심. 우리 삶도 검은 고니 조심.
안순택<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