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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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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19 16: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조선후기 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보면 대남(大男)의 한 끼 식량이 7홉에 하루 2식 1되 4홉, 중남(中男)은 한 끼 5홉, 하루 1되, 소남(小男)은 한 끼 3홉을 먹는 것으로 돼있다. 덩치 큰 어른은 10인분짜리 전기밥솥에 가득 지은 밥을 하루에 먹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다블뤼 신부는 “우리 천주교인 중 한 사람은 7인분을 먹는다. 이는 그가 먹은 막걸리 사발수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라며 놀라고 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대식가였다. 그렇게 먹지 않고는 농사일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벼농사는 씨앗을 뿌리고 모내기를 하고 거둘 때까지 여든여덟 번 손을 써야만 한다는 번거로운 농사다. 한자의 ‘쌀 미(米)’자가 바로 여든여덟(八十八)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여든여덟 살을 미수(米壽)라고 하는 이유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고도 했다. 쌀 한 톨에 농부의 땀 일곱 근이 배어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힘든 농사일을 하려면 많이 먹어야 했다. 기운을 뜻하는 기(氣)자, 정신을 뜻하는 정(精)자에는 모두 미(米)자가 들어있다. 사람의 기운이나 정신이 모두 쌀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았던 거다.

▷‘쌀’의 어원이 고대 인도어 ‘sari’라는 게 정설이지만, 사람의 ‘살(肉)’에서 왔다는 설도 그 때문이다. 쌀을 먹으면 살이 되고,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므로 ‘살’이 ‘쌀’이 됐다는 것이다. 박갑천의 책 ‘재미있는 어원이야기’를 보면 “식물의 살(쌀)과 동물의 살(고기)을 먹음으로써 우리의 ‘살’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 ‘살암’이 ‘사람’”이라고 한다. 쌀은 민족의 살과 피였고 정신이었다. 인사를 해도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한다. 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이다”라며 밥에서 한국인은 유토피아를 찾는다 했을 정도다.

▷쌀 소비가 줄더니 이제는 잡곡에도 밀리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전국 3018가구를 대상으로 한 ‘2014 식품소비행태 조사’에 따르면 ‘자주 먹는 밥’으로 40.1%가 잡곡밥을 꼽았다. 흰 쌀밥은 30.5%에 그쳤다.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지난 18일을 ‘쌀의 날’로 정한 것도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노력일 터다. 요즘 아이들이 아니꼽고 언짢아 상대할 마음이 없거나 그렇게 만드는 사람을 ‘밥맛’이라 하는 걸 보면 정말 ‘밥맛’이 없는 모양이다. 맛있는 밥을 만들어 먹게 할 순 없는 걸까. 누가 뭐래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안순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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