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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김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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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1.16 18: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배추는 다섯 번 죽는단다.  김치장수 심동철 씨가 쓴 ‘인생김치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밭에서 뽑히며 죽고, 뿌리가 잘리고 몸통이 두 쪽 나면서 죽는다. 소금에 절여져 싱그러움을 잃어가며 죽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매운 양념에 버무려지면서 죽고, 장독에 담겨져 땅에 묻혀 죽는다. 그렇게 죽어서 비로소 김치라는 일용할 양식으로 부활한다. 지난 주말 전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배추가 죽었을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김장을 담가 이웃과 나누는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행사 현장은 정겨운 울력이요, 푸른 채소를 붉게 물들이는, 탈 없이 겨울나기를 바라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웃음으로 버무린 김치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김장에 쓰이는 재료를 보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고추 마늘 생강 등 입에 넣었다가는 단단히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한 재료들이다. 톡톡 튀는 강한 맛으로 무장한 재료들이 발효되어 상생의 타협점을 찾는 게 김장이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남정네, 아낙네들이 모여 담갔으니 맛있는 김장이 됐을 것 같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10월령은 김장 노래로 시작한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1960~70년대만 해도 김장은 ‘반 양식’이었다. 겨울 내내 모든 먹거리는 김치와 궁합을 맞췄으니 김치는 ‘반 식량’이었고, 그래서 김장은 마지막 농사였다. 올해도 수많은 배추가 죽어갈 텐데 현지에선 배추를 갈아엎고 있다니 입맛이 쓰다.
 
▷배추 무 작황이 좋아 김장 비용이 지난해보다 20~30% 낮아질 거란다. 하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정부는 농수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바꾸겠다고 하지만 그 말만 믿고 있기엔 우리 현실이 너무 가파르다. 소비자가 나서야 하겠다. 배추김치, 동치미, 깍두기를 평년보다 더 많이 담고 소비하는 거다. 날씨에 민감한 농산물은 적게 나올 때는 적게 먹고, 많이 나올 땐 많이 소비해 주는 것 또한 나눔 정신 아니겠나 싶다. 어려운 이웃도 이웃이지만 농민도 이웃이다.
 
안순택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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