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찾아가니?’‘우리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산 높으면 기어가지.’‘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물 깊으면 헤엄치지.’이것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민요입니다. ‘타박’이라는 말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나 타인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지요. ‘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의 탓’ 그것이 우리가 누구를 타박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자신과 관계된 일들이 잘되어 가면 자신의 공으로 즉 자신
화단에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해바라기와 장미 그리고 땅국화 등 여러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만 쳐다보느라 얼굴이 항상 노랑이었고 장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 화장을 했기 때문에 색깔이 여러 가지로 예뻤습니다. 그런데 땅국화는 키도 조그마하고 꽃도 작아서 그냥 해바라기와 장미의 사이사이에 비추어지는 햇볕이 쬐어지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해바라기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는데 장미는 매일 땅국화를 놀렸습니다. “넌 키도 작고 생긴 것도 못생겼고 우리 아래서 사니까 좋아?” 땅국화는 마음
“스님! 사주 볼 줄 아세요?”이것이 내가 출가하고 가장 많이 사람들에게서 들어온 질문입니다. 출가하고 처음으로 속가 집에 갔을 때 주변에 어른 분들이 오셔서 조심스럽게 물었던 말이 ‘공부 많이 했으면 좀 가르쳐 줘요’였습니다. 그 말은 그냥 받아들이면 공부한 부처님 법을 알려 달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분들의 눈빛에서 원하는 것은 다른 의미였습니다.스님이 되어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모르는 사람이나 수행을 하면서 곁들여서 사주 공부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묻는 말이 그것입니다. 내가 시드니에서 몇 년을 학생들하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친구들인데 목적지가 같아서 같이 길을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길을 가는 습관은 매우 달랐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데도 한 사람은 주로 땅만 내려다보고 길을 걸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주위를 살피면서 발걸음을 내디뎠고 나머지 한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땅만을 보고 걷는 사람은 발걸음은 조심스럽게 내디뎠지만 지나온 길을 제대로 보지를 못했고 하늘을 주로 보고 걸은 사람은 땅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돌부리에 걸리던지 패인 웅덩이에 발을 헛디디어 넘어질 뻔한 적이 한두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를 여러 가지 표현으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정보화시대라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정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또는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대중매체가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기 전에는 글을 아는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소문’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아는 대중매체의 전이었다고 말을 할 수 있는데 우리 스스로가 아는 것처럼 소문이라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어느 정도가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사
세상에는 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시각, 청각,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 등 다섯 가지의 감각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고 제일 민감하게 작용을 하는 것이 귀로 소리를 듣는 청각입니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색을 가지고 있어서 빛이 있으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시각으로 보이는 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공간적 제약을 덜 받는 소리입니다. 공간의 제약을 어느 정도 극복을 할 수 있고 빛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우리가 의식이 깨어있는 순간이라면 주변에서 들려오거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물소리를 들어보아라.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와 강물소리를 들어보아라.얕은 개울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깊은 강물은 소리가 없이 흐른다.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말씀하신 부분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세상엔 얕은 개울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처럼 항상 주변을 요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박씨만큼의 일인데도 마치 망고 씨앗 정도의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 알맹이와 상관없이 일을 점점 키우지만, 진실을 사람들이 알고 나면 결국엔 자신의 신용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불을 사용하면서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으며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고 연료를 태워서 사용하는 기계장치가 점점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의 영역이 커지고 있으며 시간적인 모습에서도 같은 시간 동안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삶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습니다.불은 원시시대에는 숭상하는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들의 삶에 빠져서는 되지 않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분야와 각자의 추구하는 방향에서 불을 이용한 많은 것들을 행하고 있는데 불교에
만약 당신이 사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저는 ‘고향’이라고 말할 겁니다. 왜냐면 그곳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있으니까요.살다 보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따라서 사는 곳을 옮기는 경우가 많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때 고향을 떠납니다. 물론 살면서 고향을 두고 다른 지방으로 옮기는 일도 있고 다른 나라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때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다른 장소에서 살고 있더라도 사람들은 마음에 고향을 품고 살아갑니다.고향은 장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스승은 누구일까요? 부모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는 첫 번째 스승이 된 후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추구하는 것은 이것저것 많이 있지만, 그중에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삶의 질이나 가치관 그리고 인격에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그럼, 어떤 스승이 좋은 스승일까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사람이 좋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스승이라고 대답을 할 겁니다. 물론 좋은 가르침을 주면 좋은 스승입니다. 그럼 좋은 스승에게
누군가가 가끔 묻습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냐고? 불교에서는 운명을 어떻게 보느냐고? 세상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길든 짧든 우리가 보고 느껴지는 것들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스스로 삶에 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고 또 계속되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죽음이라는 문제는 누구나 언제나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입니다. 죽음을 연장하기 위해서 인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그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투자해서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옛날, 남의 흉을 잘 보는 사람이 여러 사람과 함께 방 안에 앉아서 밖에 있는 어떤 사람의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그 사람에게는 두 가지 허물이 있는데, 하나는 화를 시시때때로 잘 내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항상 일을 경솔하게 처리하는 것이다.”그때 문밖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어떤 사람이 이내 방에 들어와서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이 버릇없고 나쁜 사람아. 어디 감히 나의 흉을 보느냐.”이 모습을 본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왜 그를 때리는 것인가?”문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말하였습니다.“내가 언제 화를 잘 내며 경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상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고 이상이 현실인 듯이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이상과 현실 이 두 단어는 어떨 때는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세상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경우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 미래에 대한 꿈을 설계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 어린이들은 꿈을 꾸는데 시시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며 그들이 꾸는 꿈은 변해갑니다.
“겉모습이 예쁘다고 마음도 예쁜가요?”어느 날 사람들과 차를 마시다가 한 남학생이 내게 물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도리어 물었습니다.“음. 그럼 못생긴 사람은 마음도 못생겼을까?”많은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나 남에게 자주 해보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상대방의 진심을 모를 때는 겉모습을 보고서 상대를 판단합니다. 우리가 가진 통찰력은 미리 얻은 선입견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 진심을 느끼는 것보다 앞서서 작용을 합니다. 어떤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관상은 잘 보지만 그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혼자서 사는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다. 가깝게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나 이웃 그리고 마을 사람들 또는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나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 크게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과 그물이 수많은 묶인 매듭의 고리로 연결된 것처럼 사실적으로 우리의 삶도 보이지 않지만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모든 동물 무생물까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간단한 예로 어떤 물건 하나를 샀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 물건을 파는 사람과 그 물건을 그곳까지 운반한 사람과 그것을 만든 사람과 그 물건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의 부위 가운데 입 다음으로 손 그리고 발이라고 할 수 있다. 입은 산소공급부터 음식 공급 그리고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쓰이고 그다음은 손인데 다른 것들을 자신과 연관되도록 하는 데 쓰이므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버리는 동작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발은 전신을 지탱하는 역할부터 걷기나 달리기 또는 운동할 때 꼭 필요한 부위입니다.발로하는 동작 가운데 내가 가장 즐기는 것은 걷는 것입니다. 왜냐면 발만을 움직여서 많은 것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도시에 살 때는 거의 매일 아침
우리는 우주의 크기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문명을 개발해 오면서 궁금한 것을 알아내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지구 밖으로의 도전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껏 개발해낸 어떠한 도구나 과학자의 노력에도 우주의 크기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우주의 크기를 알지 못하듯이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크기입니다.마음을 한 번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얼마 정도의 크기입니까? 보입니까? 잴 수 있나요? 모르긴 해도 자신 있게 ‘내 마음은 이 정도요’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어떤 이들은
어떤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매연을 품어 내는데 그것이 그 사람에게 날려 와서 콜록콜록 기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차를 몰고 가는 사람에게 욕을 했습니다. 욕하는 것을 듣고 있던 그 사람의 친구가 한마디 했습니다.“네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로맨스와 불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친구가 ‘네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라는 말을 했다면 욕을 한 그 사람이 평상시에 어떻게 차를 몰았는지를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차뿐 아니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함부
“저 사람을 어떻게 아세요?”이 질문은 요즘 들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처음에 몇 번을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내가 누군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 질문을 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고민해보다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과는 아무런 이유가 없이 친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가 목적을 가지고 만남을 유지하기도 하고 아니면 한쪽에서는 아무런 바라는 것이 없는데 상대방은 뭔가 수를 가지고 인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