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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열흘의 가족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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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2.04 16: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여행의 설렘은 공항에서 고조를 이룬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아이 쇼핑도 하고 차도 마시며 면세점을 순회하는 것도 아주 꿀맛이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 살아서 특별히 가까운 외사촌들과 자주 여행하다 보니 서로의 취향을 알고 이해하며 선을 넘지 않으니 여행은 언제나 편했다.

여행팀을 공항에서 만났다. 인솔자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확인하고자 한 곳에 모이게 했다. 사는 곳과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는 중에 이곳에서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27명이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전에는 공항면세점이 많았던 것 같았는데 몇 년 만에 와보니 허전할 정도로 면세점이 줄어든 것 같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입주조건이 까다로운지 어딘가 빈 것 같고 허전해 보였다.

긴 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었으니 일행이 누구인지 모른 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인솔자는 가방 조심하라 한다. 인천공항에서부터 듣던 소리다. 소매치기가 얼마나 많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조심하라고 할까.

왜 그렇게 소매치기가 많냐고 물어봤다. 이탈리아 본토 사람보다는 난민이 많아서란다. 여행을 많이 다닌 동생은 저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인솔자도 사진을 찍어 줄 때면 “제 가방 잘 살펴주세요.” 한다. 얼마나 많이 소매치기를 당했으면 저럴까 싶어 여행의 설렘이 감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한 손을 가방에 붙이고 다녔다. 즐겁게 해야 하는 여행에서 경계하는 상황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우리 여행팀에는 27명의 관광객과 인솔자 한 명이 함께 했다. 28명은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딱 붙어 다녔다.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인솔자 꽁무니에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서먹했던 마음도 누그러진 것 같다.

우리 여행팀의 제일 연장자는 85세인 분으로 60세 된 아들이 모시고 왔다. 가는 곳마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다니며 가이드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자세히 전해준다. 시끄러워 안 들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한마디 한마디 아버지한테 전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 형제들은 요즘 세상에 저런 효자가 없다며 칭찬을 했다. 요즘 누가 부모를 저렇게 극진하게 모실까. 연세 높은 어르신도 혹시나 자식에게 부담될까 염려되었는지 힘든 내색도 없다. 어르신보다 젊은 우리도 힘든데.

아들이 주선해서 온 듯한 부부. 자식에게 의지하는 모습의 부모는 아들이 든든한 모양이다. 청년이 부모에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자상하다. 젊은 부부가 중학생이 된 아들을 데리고 온 가족. 역시 젊음은 좋은 것 같다. 우리는 자식을 데리고 여행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아버지 혼자 두 딸을 데리고 온 가족. 셋은 모두 말수가 별로 없다. 딸들에게 가서 재미나게 지내자며 손을 내밀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들에게 보상하듯 휴가를 내서 합류한 젊은 부부. 경찰 공무원을 퇴직하고 딸이 보내줬다며 자랑하는 부부. 코로나로 결혼식만 올리고 뒤늦은 신혼여행을 즐기는 부부. 자유여행 중에 우리와 같은 여행코스에 함께 하는 두 젊은이. 우리 형제들 여덟 명이 함께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눈인사만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이 되어간다.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여행 중에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얼굴로 서로를 격려하며 힘든 여정도 즐겁게 다녔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고 힘들면 위로했다. 인솔자도 하나가 되어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다녔다.

인솔자는 유럽여행 인솔이 천직인 듯하다. 버스 탑승시간이 길면 지루해할 우리를 위해 전날 저녁 팀원 하나하나의 포인트를 잡아 쓴 글을 디제이 흉내를 내며 신청곡까지 들려줬다. 긴 시간의 버스탑승도 유쾌하고 즐겁게 하여 주니 지루하지 않았고 행복했다. 재즈 전공자답게 본인 노래도 간간이 들려준다. 무대에서 공연하며 관객과 즐겨야 할 사람인데 안타깝다.

한국 사람은 정말 정이 넘치는 민족인가보다. 며칠 만에 가족이 되어 서로를 격려하며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판테온 신전에 갔을 때 팀원 한 분이 갑자기 쓰러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보살피고 걱정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숙소로 들어가 쉬는 그 팀원의 건강을 염려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 인솔자는 현지 가이드를 통해 우리에게 소식을 알려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여행하다 보면 한두 팀 정도는 불편한 사람이 있다.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몇 번의 여행에서 그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팀은 하나같이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를 챙긴 게 아닐까. 비록 열흘간의 가족이었지만 서로를 배려해서인지 여권이나 금전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귀국길에 올라 멋지게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은 짧은 시간에도 멋진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百人百色이요 萬人萬色인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사는 아름다운 사회. 그중에 으뜸이 한국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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