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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약은 약사에게, 공연은 전문가에게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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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1.14 14: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공연예술에선 늘 약속이 최우선 가치다. 약속은 곧 공연의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 보이는 연주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노고과 땀방울이 있어야 완성이 된다. 보이는 손길만큼 보이지 않는 손길과 노력이 있어야 안전하고 온전한 공연으로 무대 위에 올려질 수 있다.

지난주에 대전예술의 전당 20주년 기념 오페라 ‘운명의 힘‘이 공연 하루를 앞두고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통산 공연 일주일 전에 무대셋업이 끝났어야 할 무대 세트가 공연 전날까지 마지막 세트가 설치는커녕 납품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현재까지 책임 공방이 거세다. 공연 운영을 두고 시 행정과 대전예술의 전당 행정이 행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과 예술인들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공연이 취소되었으니 이를 두고 조사와 감사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절차겠지만, 정작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 제공을 한 무대제작 업체는 뒷전이고 이 업체가 선정된 배경에만 온갖 질타가 집중되는 모양새다.

공연용 무대 세트는 일반 건축과 달리 그 쓰임새와 시공절차가 매우 다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설치되고 구동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면 간 변환을 위해 신속한 구동과 출연자를 위한 안전한 통로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고온의 조명기기에 노출되는 상황과 공연장 내 갇혀 있는 공기 안에서 쉽게 일어나는 화재의 위험에도 안전하도록 방화, 방염처리는 필수다. 전 세계 대부분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들이 대부분 화재의 역사가 있는 것도 바로 이 특이한 무대의 현장 상황 때문이다. 그래서 조립과 전환이 쉽고 무대 안전이 우선시되어야 하기에 구동의 안전성과 연주자의 안전성 준수를 최우선 가치로 놓고 설계·설치해야 하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다.

그런데 이토록 전문적인 무대제작업체가 선정되는 절차에 제도적 허점이 있다. 무대제작 경험과 실적을 갖추어야 할 제작업체 선정이건만, 현 시스템상에선 부적격 업체를 걸러낼 제도적 방지책이 거의 전무하다. 일정규모를 갖춘 업체라면 공연 실적과 기록이 없어도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응모해서 선정이 가능한 현 시스템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공연장과 공연계에서는 최저가 입찰방식이 아닌 ’업체와의 협의에 따른 계약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였지만, 문화예술 행정에선 균등기회 원칙에 따라 무대 전문업체가 아닌 일반 업체도 입찰이 가능한 공개입찰방식으로만 진행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안전성과 전문성이 가장 고도로 고려되어야 하는 무대제작이 이렇게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국적인 상황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고 있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의 경우도 공연이 하루 늦춰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도 정확히 같은 사정인듯하다. 이 작품의 공연무대 제작업체도 '도배, 실내장식 및 내장 목공사업'으로 등록된 업체가 선정되었고, 납품일정 미준수로 첫 공연이 무산되었다. 예술단 관계자도 현 공개입찰 시스템상에선 이런 업체를 걸러낼 수도, 계약을 일방 해지할 수도 없는 제도란다. 그나마 장기 공연이라 후속 공연이 진행 중이다.

이번 공연 하루 전에서야 취소를 결정하게 된 상황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납품업체가 최초 납품일정도 어긴데다가 설치 중량도 초과해서 제작해서 설치 중에 구조물이 낙하하는 일까지 있었건만 제작진은 거의 3일 밤낮을 현장보수를 통해 안전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나마 납품된 세트엔 방염처리도 안 된 저가 소재를 사용한 데다 소품도 25%만 납품하는 상황인데도 이를 통제할 제도적 시스템이 없어 현장에서 계속 수정·보완을 하며 안전체크를 했다. 제작업체가 아닌 예당 직원들이 말이다.

입찰을 따낸 업체는 무대제작 전문이 아닌 무대장치 임대업체다 보니 하도급을 네 군데나 발주해놓고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난관에도 그나마 하루 전까지 리허설을 하며 공연의 희망을 품은 건 제작진의 강한 공연 성사 의지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공연 나흘 전, 사흘 전까진 납품이 가능하다던 업체는 마지막 리허설 당일 최종세트를 마지막 공연일인 토요일에나 납품할 수 있다고 일방 통보를 해버렸다. 그간 난관에도 공연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오갔던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이제라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이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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