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가 되면 곳곳에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시, 군, 구, 읍, 면, 동별 또는 동문회나 단체별 개최하는 축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더구나 올가을은 코로나 방역 해제 후 그동안 막혔던 물길이 터지듯 축제의 팡파르가 연일 울려댄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 많게는 수억 원이 소요되는 이런저런 축제에 직접 참석해 느낀 것이나, 귀에 담기는 소식은 개최목적을 충족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축제가 그렇다고 할 수 없겠으나 대체로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느 축제나 유공자 시상, 노래자랑, 경품추첨, 초청공연은 식상해진 고정 내용이다. 게다가 먹고 마시고, 끝장에는 더러 다툼도 발생한다.
한마디로 대부분 향토축제가 지역마다 차별성도 없을 뿐 아니라, 애국 애향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특화된 내용도 찾아보기 어렵다. 축제가 끝나면 감동의 여운은커녕 딱히 기억에 남을만한 것도 없다. 그저 초대받은 사람들만의 행사처럼 비추어진다.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선출직 공무원과 사회단체장 또는 정치적 야망이 있는 자들의 자기 자랑과 눈도장이나 찍는 행사가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하루하루 연명조차 고달픈 일반 시민들은 홍보 뒷전에 밀려 행사 자체를 모르기도 하고, 설상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향토축제는 좀 더 명확한 목적의 주제에 부합한 내용을 채워야만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떨쳐낼 수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더 많은 사람이 어울리는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한 해를 시작하는 새봄의 약속이나, 한해의 결실을 거두어 나누는 축제가 지역은 물론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목적으로 지역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목적의식이 불분명하여 본뜻이 훼손된 단순히 먹고 놀자는 식의 연례행사쯤으로 지속된다면 남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이 어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극단적 선택을 한 뉴스가 들려 올 때마다 자기 일처럼 가슴을 쓸어안게 된다. 생활고와 병고를 견디지 못해, 심지어 어린 자식까지 사지로 끌어들이는 가족 간 극단적 선택은 믿기지도 않고 숨길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사회복지 안전망은 빈틈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각의 그늘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긍정적인 효과가 눈에 띄지 않는 흥청망청 축제의 현장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일이 정부가 도맡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가까운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한 때이다. 허투루 쓰이는 돈은 없는지 짚어보고 어려운 민생에 보탬이 되도록 물길을 바로 잡아야 할 가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