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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진 병원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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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0.18 16: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어느덧 10월과 아쉬운 이별식을 치르고 11월과의 만남을 준비할 시간이다. 가을은 점점 무르익고 저만치서 하얀 겨울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가을은 추억의 계절이고 그리움의 계절이다. 문득 빛바랜 앨범을 들추어 보며 지나간 추억의 시간과 만남을 시도하고 싶어진다. 사진은 추억이고 인생이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의 얼굴 그 자체를 보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의 상태로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되고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진은 바로 삶의 한 페이지인 것이다. 지나간 어느 시간이 그리울 때 우리는 사진을 통해 과거의 추억과 조우한다. 어린 시절이 그리우면 어릴 때 사진을 들춰보게 되고 학창 시절이 그리우면 당시 찍은 사진을 통해 그 순간을 기억하며 잠시 추억여행을 시작한다.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본다. 사진 속 어머니는 너무 젊으셨고 상당한 멋쟁이셨다. 교복을 입고 찍은 여고생 시절의 사진은 70여 년이 된 것으로 가보로 소장되는 소중한 사진이다. 한창 꿈이 많은 여고생 시절의 어머니 사진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서 웃고 계신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면서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 찍은 사진은 인생이 덧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은 아버지의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사진을 통해 건강하신 아버지를 만나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무상함과 알 수 없는 삶의 처절함마저 느낀다.

얼마 전에 시간이 많이 흘러 찢어지고 훼손된 사진을 깨끗하게 복원해 주는 사진 의사를 방송을 통해 만났다. 아직은 생소하고 색다른 직업이었는데 매우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었는데,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자신감 있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서 후광이 발산하는 듯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재산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추억의 사진을 마치 새로 찍은 사진처럼 깨끗하게 복원해 주는 그 기술은 다름 아닌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희미해지는 누군가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추억을 다시 살려주는 사진 의사는 사진을 통해 훼손된 추억을 살려주고 과거의 인생을 복원해 준다.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는 사진 의사의 모습이 존경스러움으로 다가왔다.

평소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때그때 모습을 사진 찍어 놓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자신 모습을 사진 속에 남기려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추억이고 삶이고 역사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추억과의 대면은 애달픔과 안타까움의 항해를 하는 작업인 것 같다. 지나간 한 컷을 다시 그때와 똑같이 현실로 재현할 수 없기에 아쉬움이 밀려들지만 그래도 기억의 한 페이지로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가진다. 흘러간 추억의 시간을 꽃피게 해주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지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잠시나마 옛 시절로 돌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위치를 확인해 주고, 시간의 흐름에 내 모습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사진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가 나눈 사랑의 기억들은 훗날에도 누군가의 영원한 유산이 될 것이다. 소중한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추억의 보석함에 보관하자.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매 순간이 기적과 같은 인생에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인생의 한 컷을 위해 오늘도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연출한다. 점점 무르익는 가을 속에서 원숙한 인생의 사진이 탄생하는 거룩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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