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하면 저렇게 젊게 사는 것일까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다. 치매에 걸려 작곡한 게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같은 선율이 18번 반복되는 유명한 발레곡, 볼레로였다. 내용인즉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리듬 169개의 반복 패턴으로만 작곡한 볼레로라는 곡이 전형적인 치매 증상일 수 있겠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음악을 하는 처지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가설이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이 ‘가능성’ 정도로 제기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들어보면 같은 리듬과 주제가 반복되지만, 그토록 정교하고 매력적인 색채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데곡을 그저 반복이 심하다는 이유로 치매로 몰아가는 상황이 탐탁지는 않다.
마르타 곤잘레스 살다냐 라는 이름의 스페인 할머니의 영상이 화제가 됐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려주자 갑자기 발레 동작을 펼치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쿠바에서 공부했던 전직 발레리나였다. 언어능력과 인지 능력이 감퇴해도 음악과 함께했던 그 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여 춤사위를 재현해내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눈빛과 호흡마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영상이 퍼진 시점엔 주인공은 이미 고인이 되어있었지만, 치매의 순간에도 발레리나로 완벽히 회귀한 그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80대 노인의 피아노 연주도 인상적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작곡가인 폴 하비라는 노인이 등장한다. 잠시 후 아들이 ‘파, 라, 레, 시’ 네 개의 음정을 불러주자 그 음정들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즉흥곡을 만들어 친다. 어릴 적 주인공과 그 아들이 하던 작곡 놀이라는 것이었는데 치매인 상황에도 음악만큼은 전혀 손색없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놀랍다.
한 달 전, 전설적인 가수가 영면에 들었다, 97세의 나이로 작고한 토니 베넷이다. 토니 베넷의 대표곡은 수없이 많은데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가 그중 가장 유명하다. 재즈나 토니 베넷이라는 가수를 모른다면. 2년 전, 그러니까 토니 베넷이 95세 때 은퇴 무대에서 부른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을 들어보면 다른 어떤 형용사도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 그 조성 그대로 단 한음도 내리지 않고 자신의 대표곡을 완창하는데 되려 후반부엔 고음으로 변주하기까지 한다. 나이가 들면 고음을 내는 데 무리가 있어 대개는 조성을 바꿔 낮춰서 부르는 게 일반적임에도 전공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발라(Balla: 덜덜 떨리는 소리-나이 들어 호흡과 근육의 힘이 부족해 찾아오는 현상) 한 자락없이 깔끔하게 끝낸다.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던 토니 베넷이 5년째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은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같이 연주했던 레이디 가가와 연주자들도 못알아 보던 상황이었지만, 무대에 오르자 눈빛이 변하며 전성기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이며 제스처까지 그대로 되살아 나는 모습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도대체 음악이 가진 힘은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