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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테크와 아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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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6.20 16: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최근 빅테크기업들과 패션. 디자인 기업들의 로고 변화를 나타낸 이미지가 관심을 끌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들인데 로고의 글씨체가 간략해지는 특징이 보인다, 붓이나 펜으로 쓸 때 생기는 획의 삐침(Serif)이 없는(Sans) 산세리프체(Sans-Serif) 처럼, 획이 반듯하고 일정해졌다.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메이커들이니 나름대로의 논리나 철학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댓글 하나가 눈에 띈다.
‘모바일에서 보려니 가독성 좋게 바뀌었네’ 대형화면이나 광고판에서의 노출보다 손안의 모바일 화면에서의 가독성을 중히 여기기 시작한 것이리라.

“튜브 물감은 우리가 자연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모네, 세잔, 피사로…그리고 인상주의도 없었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대가 르누아르의 말이다.
튜브물감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화가들은 작업실에서 유리판이나 대리석판에 채색재료를 놓고 공이로 빻은 다음에 달걀이나 기름. 왁스를 섞어 물감을 만들었다. 혼합과 보관이 어렵다 보니 그림 대부분은 실내작업이 가능한 정물과 인물화였고, 야외풍경은 작가의 기억과 상상에 의존했다. 그러다가 주석튜브에 물감을 담아낸 튜브물감이 발명되고 나서는 화가들이 이젤과 화구를 들고 직접 밖으로 나가 손에 잡힐듯한 찰나의 풍경을 직접 눈에 담아가며 인상주의를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미술 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주말이면 두 딸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러 패널이 나와서 노랫말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며 먹방을 한다. 받아쓰기, 띄어쓰기까지 하며 들리지 않는 정확한 가사를 맞추려 애를 쓴다. 멀쩡히 정식 발매된 음반들인데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니, 일견 아이러니다.

1990년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음반을 접하는 방법은 음원차트와 공중파, 라디오. 그리고 이른바 ‘길보드’라고 불리던 거리 가판대 확성이었다. 당시의 평론가들도 공공연히 그 주의 음원차트 1위를 예상하는데는 신촌이나 명동으로 대표되는 번화가에서 특정 음원이 울려 퍼지는 빈도수로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멜로디는 설득력 있게 주제 선율을 갖추고, 가사도 함축과 메타포를 담아 잘 전달되는 단어를 골라 썼다. 선율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거나 특정 부분의 반복을 통해 멜로디를 각인시켰다. 음악사에서 악곡의 형식이 발달한 양상과 똑같았다. 주제 선율을 기억하기 쉽게 돋보이게 빚어내고, 반복하고,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변주(바리에이션)로 화려함과 색채감을 더했다.

그랬던 음악이 멜로디가 잘게 쪼개지고, 가사가 빠르고 쉴 새 없이 복잡해지고,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칠 정도로 선율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한 건 사람들의 음악을 공연장이나 공중파가 아닌 ‘손에 들고 다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소니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재생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같이 듣는 음악에서 혼자, 그것도 여러 배경소음이나 관중의 함성에 신경 쓰지 않고 원래의 음원 그대로를 직접 자신의 귀에 꽂아놓고 듣기 시작했다. 귀 전체를 덮던 헤드폰에서 귓구멍에 직접 꽂는 이어폰으로 크기가 줄어들고, 이젠 거추장스러운 줄까지 걷어내 무선으로 바꾸곤 주변 소음을 노이즈 캔슬링으로 차단해가며 듣는다. 설사 가사가 모호하더라도 이미 손에 든 화면엔 실시간으로 가사가 떠 있다. 테크의 발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도한 매체를 소비자의 손과 귀, 그리고 눈에 직접 갖다 놓는다.

현대 상업 음악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이다. 최소한의 리듬이나 음계 패턴만 제시하되, 나머지의 흐름과 윤곽이 잡힐 듯 안 잡힌다. 그래도 상관없다. 들을 사람은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듣고 세밀히 즐길 수 있다. 예전엔 극장을 나서며 휘파람으로 흥얼거릴 수 있도록 영화음악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유려한 선율과 귀에 쏙 들어오는 서정적인 영화음악을 썼던 엔니오 모리코네나, 바그너 영향으로 웅장한 금관과 다채로운 화성을 자랑하던 존 윌리엄스의 음악들이 그랬다.

이젠 미니멀리즘의 대표주자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영화음악으로 쓰이더니 헐리웃의 거장 한스 짐머에서 정점을 찍은듯하다. 뭔가 멜로디가 손에 잡힐 듯 떠오르진 않지만, 특유의 패턴과 분위기를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예전에 본 마틴스콜세지의 스릴러 영화에 쓰인 음악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줄 알았는데 폴란드의 거장 펜데레츠키의 교향곡이었다. 물론 음악이 익숙해지는 데는 여러 번 듣고야 가능했다. 언제든 귀로 즉시 배달해주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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