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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염려(念慮)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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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6.07 16: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수필가
신약 성경 중 ‘바울 서신’으로 일컫는 13편의 성경 중 빌립보서 4:6-7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말이 나온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편지로 각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과 격려의 편지로 신앙심을 북돋우고 있었다. 염려(念慮)는 근심하는, 걱정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려(慮)를 파자해 보면 虍는 호랑이 가죽을 나타내며 몸통과 발을 떼어내고 머리만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그런 글자의 몸통과 발 대신 고민하는 思자가 자리 잡고 있으니 근심과 걱정일 수 밖에 없는 글자가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삶’은 염려의 연속이기도 하다. 염려는 걱정이고 고민(苦悶)이기도 하다. 청소년기에는 진로에 대한 걱정, 성인이 되고는 살아 갈 생업과 자녀 양육에 대한 걱정과 온갖 우수마발(牛溲馬勃)로 머릿속이 안정 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삶을 불가(佛家)에서는 고해(苦海)라고 한다. 苦는 괴로움이고 쓰다는 뜻이다.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와 같다는 말이다. 이런 삶에 파묻히고 창파(蒼波)에 떠도는 나뭇잎 같아야 될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닥쳐진 현실을 극복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수동적인 휩쓸림 보다는 능동적인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현실을 극복하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는 어찌 보면 쓸데 없는 잡념이고 고민(苦悶)거리가 아닐까?

불가(佛家)에서는 고(苦)를 ‘전세에 지은 업 때문에 받는 심신의 괴로움’으로 풀이한다. 민(悶)은 어둡다, 깨닫지 못하다로 풀이된다. 괴로움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는 그냥 염려하는 것이 고민이다. 고(苦)의 반대말은 낙(樂 : 즐거울)이다. 살아가는 세상을 고해라고 생각하는 부정적 태도보다는 낙해(樂海)로 생각하는 긍정적 삶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공자(孔子)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하며 3락의 삶이 군자의 덕으로 꼽았다. 대단한 철학자이거나 도를 닦고 수양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매 매일의 삶에 부딪치는 문제들을 고민하고 염려 할 것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6:27에서 “너희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며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마태복음 6:34)”고 한다. 오늘,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오늘의 삶을 후회하지 않게, 어렵고 괴롭다해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로 이해해 본다.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밤새 기와집 여러 채 짓느라 잠을 못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잠못 들고 온갖 고민을 했다는 말이다.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들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마을에서 장수 노인으로 불리는(현재 96세) 어른을 만나 뵌 적이 있었다. 어르신 말씀 중에 “요새는 왜 이리 걱정 할게 많아? 예전에는 그저 먹는 걱정외는 할 것이 없었어” 라고 하며 대문 밖을 나서면 차 조심 등 온갖 걱정 거리로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그렇다. 우리는 매 매일, 매 시간 염려와 걱정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칭 ‘빌라왕’이 불러 온 전세 사기 문제,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더위와 올라 가는 물가(전기요금 등 공과금) 문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문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등, 살아가는 데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어둡게(慮 or 悶)하는 일들이 연속되고 있다.

서서히 수은주가 올라가는 요즘, 올 여름 만큼은 이런 저런 고민 거리와 염려 할 것 없는 청량(淸凉)제 가득한 소식만 날아들어 가뜩이나 얼굴 찌프러뜨리는 불쾌지수 보다 유쾌지수가 높아가는 여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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