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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문화 언어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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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2.14 13: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아밀레이스, 뷰테인, 메테인. 아이오딘. 저마늄’
고등학생 큰딸과 얘기하던 중 등장한 화학 용어다. 2005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일본어식, 독일어식'으로 써 온 학술용어 434개를 국제기준에 맞게 바꾼 발음법이다. 여기서 국제기준이란 국제학술지나 논문에 기고하는 양식인 영어에 근거한 발음이다. 그러니까 국제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영어 기준으로 발음법이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외래어 표기는 대체로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유입된 일본식 교육 과정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일본에 학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나라가 독일이었기에 독일식 학술용어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침 속에 들어있는 효소로 학교에서 배우던 아밀라아제(Amylase)다. 독일식 발음법이던 아밀라아제가 이젠 영어식 발음인 아밀레이스로 부른다. 상처에 바르던 빨간약으로 통용되던 요오드(Jod) 역시 독일식 표현이었다. 이제 요오드는 아이오딘(Iodine)이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읽는다. 부탄, 메탄 같은 가스연료의 이름도 이젠 뷰테인, 메테인이라고 기재된다. 그래서 저마늄은 예전에 게르마늄으로 부르던 원소의 영어식 발음이다. 전 세계 과학계와 매스미디어를 주도하고 있는 영어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14세기 종교의 시대를 지나면 인간 중심의 문화인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또 1597년에 등장한 새로운 ‘오페라’라는 장르는 이후 전 유럽을 평정했다. 20세기에 영화가 자리 잡기 전까지 오페라는 4세기 동안 엔터테인먼트의 정점이었다. 그런 오페라가 만들어진 곳 역시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열린 개방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들과 전달력이 좋은 자음 발성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어는 마이크가 없던 시절에 대형극장에서 음향을 전달해야 하는 오페라에 최적이니, ‘오페라’ 하면 이탈리아고, 이탈리아 하면 햇살과 오페라를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선 부퐁 논쟁(Querelle des Bouffons) 이라는 음악사에선 꽤 유명한 사건이 프랑스 궁중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갈래의 정치적, 음악적 견해와 수많은 논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오페라를 본고장 이탈리아어로 공연하느냐 마느냐가 그 시발점이자 끝이었다. 프랑스어가 모국인 사람들이 오페라만큼은 이탈리아어로 공연하는 게 제맛이라는 사람들과, 이탈리아 오페라에 종속된 문화 사대주의기 때문에 프랑스 오페라를 지지하는 사람들 두 패로 나뉘어 싸우고 결투까지 벌였다.

이 말은 자막이 없던 시절 프랑스 사람들은 오페라를 이탈리아말로 듣고 즐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차르트의 대표작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 등의 오페라도 초연은 오스트리아 빈과 체코 프라하였지만 모두 이탈리아어로 작곡되고 공연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사람들이 이탈리아어를 오페라를 관람하는데 기본요소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고전 낭만 초기까지는 웬만한 음악용어는 죄다 이탈리아어였다. 오래전 이탈리아 관광을 떠난 한국인이 귀국편 공항 가는 택시를 잡아탔는데 차량정체가 생기자 음악 시간에 배운 대로 “Presto; 프레스토! 프레스토!(빨리빨리)” 라고 외치며 택시기사를 채근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Piano; 피아노(여리게), Forte; 포르테(강하게), Andante; 안단테(걷듯이-천천히), Moderato; 모데라토(보통 빠르기), A Cappella; 아카펠라(성당에서 부르던 무반주 합창), Grande; 그란데(장엄한-거대한) 등등 빠르기와 악상기호 대부분은 이탈리아어가 공용어로 오랜 시간 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의 등장으로 인해 미술 분야도 포함해 중세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어는 유럽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문화 언어이자 그 자체가 문화로 받아들여졌었다.

옥스퍼드 사전에 1976년 처음 등재된 한국어가 ‘김치’랑 ‘막걸리’ 였다. 이후 45년 동안 스무 개 남짓 등록되었는데, 2021년 한해에만 무려 26개가 실렸단다. ‘대박’, ‘오빠’, ‘먹방’ 등등 일상 용어들이다. 우리의 일상 용어들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가 가지는 힘이다. 물론 한류드라마의 영향으로 비속어들도 빨리 전파되는 현상들도 씁쓸하긴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쪽에선 적어도 한류는 로컬이 아닌 글로벌이다.

한국어가 문화 언어가 되어가는 시대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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