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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적과의 동침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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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2.06 14: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작년에는 내리지 않던 눈이 푹 쌓인 겨울. 발걸음도 가볍게 소리 없이 다가왔다. 바람에 실려 온 듯 구름을 타고 온 듯 소리 없이 다가온 적에게 무참히 침략당했다. 밤을 밝히기를 꼬박 사흘. 적이 휘두른 총칼 앞에 대응할 힘도 없이 무너져 일어나기도 힘들고 앉아있기도 고통스러웠다.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을 굴복시킨 적은 아직도 떠날 줄 모르고 제 세상인 양 이리저리 활보하고 있다. 제 마음대로 온 적은 갈 때를 잊어버리고 방황하듯 변이를 거듭하며 공격을 퍼붓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딸 부부가 적에게 굴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멀리 떨어져 사는데도 싸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코앞에서 앓고 있는 느낌이랄까.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우리 곁에는 적이 다가오지 않게 하려고 완전 무장하고 살았다.

실외 마스크 해제에도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하며 살았다. 색소폰 배우러 가는 것도 금했다. 호흡에 의존하는 악기이기에 혹시나 하는 염려로 두 손을 놓았다. 손녀만은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안간힘을 썼다.

한해의 끝으로 가는 어느 날, 온몸이 오한으로 들썩였다. 실내온도를 30도로 했는데도 덜덜 떨리면서 누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것같이 삭신이 욱신거렸다. 적의 침입만 아니라면 안마라도 받고 싶은데 적에게 포위당한 우리에게는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는다.

첫날, 손녀는 괜찮아서 다행이라 여기며 24시간을 마스크를 하고 지냈는데 다음날 손녀가 자꾸 누우려고 한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아가이기에 걱정이 되어 병원으로 가서 검사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적은 우리 아가에게까지 잠입한 것이다. 아프면서도 밥을 잘 먹어 다행이다 싶으면서 감사했다.

적의 침입으로 손녀는 39도로 오르는 열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10분 간격으로 체온을 재면서 아침을 맞았다. 해열제를 먹이고 열과 씨름하며 지냈다. 지독히도 아픈 내 몸은 돌볼 겨를이 없다. 오로지 아가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만 기도하며 돌봐야 했다. 열이 내리더니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흐르며 기침을 한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코가 막혀 숨을 쉬기도 힘든가 보다. 그렇게 잘 버티더니 내 품을 파고들어 울며 힘들어한다. 아가의 모든 고통이 나에게로 오라고 기도하며 애를 태운다. 나처럼 고통이 수반됐는지 아니면 숨쉬기 힘들었는지 잘 먹던 밥도 우유도 먹질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눈은 왜 또 그렇게 많이 내리는지. 푹 쌓인 눈을 치우기를 하루에 세 번씩 해야 했다. 길가에 있는 집이라 눈이 쌓이면 미끄러워 사고가 날까 걱정되어 도로까지 쓸려니 아픈 몸은 더 심한 고통이 동반된다.

낮에 치우면 밤에 또 눈이 내린다. 그렇게 눈을 쓸었어도 강추위에 얼어붙은 도로는 스케이트장처럼 반들반들하다.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염화칼슘을 뿌려달라고 하니까 모래가 얼어서 깨야 한다며 준비되면 온단다. 전에 남편이 혹시나 필요할지 모른다며 준비해 둔 염화칼슘이 있는데 단단하게 굳어 망치로 깨고 언 도로 위에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몸의 회복이 더디다. 찬바람을 맞으니 목은 더 아프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악재가 겹친 것 같다. 아직도 정원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있지만, 도로에 얼음이 녹아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적이 물러날 때까지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기승을 부리던 적은 제풀에 지쳤는지 물러갔다. 격리 해제가 되었어도 목과 코감기 증세는 남아있다. 아가도 역시 코가 막히는지 답답해한다. 사람들은 감기 증세와 같다고 별거 아니란 듯 말을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이렇게 적에게 참패당하기 전까지는.

아직도 목이 안 좋다고 하니까 의사는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서 링거를 맞으란다. 손녀를 돌봐야 하는데 못 맞는다고 하니까 나중에 맞으란다. 꼭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몸의 회복을 빨리하기 위해 맞아야 할 것 같다.

돌다리 건너듯 조심조심 지내던 3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매일 아침 확진자 발표에 외출 유, 무를 결정했었다. 그런데도 적에게 당하고 나니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느낌이다.

다행인 것은 적이 물러간 후 가족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완쾌되지 않은 것 같은 고통이 남아있지만, 남편이 휴가로 집에 와서 우리를 보살핀다. 엄마도 쉬라며 딸이 손녀를 잠시 데려가서 오랜만에 완전 휴식이다.

역병이란 적이 나타난 지도 3년이 되었다. 아직 어느 나라도 완치할 수 있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다. 처음보다 강도는 약해졌지만, 모습을 바꾸면서 살금살금 침략을 멈추지 않는다. 감기처럼 평생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걸린 사람도 있다니 조심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실외 마스크 착용도 해제한다고 한다. 더 많은 고통이 다가오면 어쩌나 걱정된다. 마스크 착용을 해제한대도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쓸 것 같다. 묘약이 나올 때까지.

할 수 있은 일이 하나도 없는 나는 과학자에게 의지해본다. 어떤 역병이 창궐하더라도 물리칠 수 있는 백신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부여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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