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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대한외국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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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1.17 13: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작년 연말, 월드컵 결승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의 인종구성에 대해 온라인 댓글 창에서 오가던 말들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라더니 죄다 흑인투성이네.”, “프랑스 대표팀은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 팀이다”, “노예들의 후손들이다” 등등.

이탈리아 유학 초기, 언어가 익숙지 않아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려 해도 대단한 용기를 내야만 했다. 대부분은 더듬거리며 묻는 필자에게 친절히 안내를 해줬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으면 아예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유학 중반, 학교에 가던 도중 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내게 길을 물었고, 마침 멀지 않은 목적지여서 같이 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할머니가 로마 한복판에서 처음 보는 동양인 남자애에게 이탈리아말로 길을 물어보다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로마 한복판에 있는 사람이니 관광객 아니면 로마사람이겠지. 딱히 관광객 차림이 아니니 여기 사람이겠거니 생각했지. 로마 어디 사는데?”

그날 학교에 가서 같은 주제로 교수에게 물어봤을 때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니 이탈리아말로 물어본 거지, 그게 뭐 대순가? 오히려 자네한테 어쭙잖은 일본말이나 중국말로(당시엔 동양인이면 니하오나 곤니치와등으로 말을 걸었다) 말을 거는게 더 인종차별일걸? 엄연히 여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인종이 다르다고 되도 않는 영어나 영화에서 본 인사말 몇 마디 던지는 건 옳지 않아.”

며칠 전 미스 유니버스에 미스 USA가 뽑혔는데 필리핀계 아시안 미국인이었다. 당연하지만, 인종과 상관없이 그저 미국인이니까 전미 USA도 뽑힌 것이고, 미스 유니버스에도 나간 거다.

단일민족인 탓에 우리 안에 다른 인종 구성원들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예전에는 한국에 있는 백인들은 다 미국사람이겠거니 영어로 말을 걸었다. 독일인에게도, 스페인 사람에게도. 굳이 그네들을 구별해줘야 하나 싶어 대충 영어를 던져보고 못 알아들으면 얕본다. 그런 모습을 보던 이탈리아 친구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한국 사람들 너네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으로 여기면 기분 나빠하잖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 보지?’

우리네 정서에서, 정작 우리는 우리 안에 사는 외국인들은 도매금으로 묶어버린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유럽인과 아시안, 아랍권과 아프리카계 흑인들도 심정적으로 나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종을 매우 저열한 등급으로 분류하고 편하게, 그러나 무례하게 구분 짓는다. ‘지저분하다, 게으르다. 무식하다’ 등등.

프랑스 대표팀이 온통 흑인인 건, 출신이나 인종을 따지지 않고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조선 말, 갑신정변으로 일가족이 몰살을 당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이 있었다. 낮에는 막노동과 저녁에 공부하던 이 동양인 청년이 훗날 의대를 졸업하고 제임스 뷰캐넌 전 미합중국 대통령의 사촌이던 뮤리엘 암스트롱과 결혼하고 귀국하는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다. 나라도 없던 동양인 청년이 미국에서 의사면허를 따 의사가 되고, 대통령 친척과 결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가진 나라인 것이다. 인종차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걸 입 밖으로 뱉고 댓글로 마음대로 써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전에 남부지방 쪽으로 공연을 갔다가 PCR 검사차 지역거점 병원을 갔었다. 그런데 검사소 한곳 창구는 아예 영어와 키릴 문자로 안내가 쓰여있었다. 알고 보니 근처에 꽤 큰 산업단지가 있는데 중앙아시아 분들이 대부분이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로마에서도 한국 사람들 잘 가던 정육점엔 한글로 ‘삼겹살’이라고 쓰여 있던 생각이 났다.
농업과 제조업은 외국인 노동력이 없으면 추수와 공정을 포기해야 할 만큼 외국인 수요가 절실하다. 여기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적인 분들도 많다. 세계화 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는 건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다.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은 앞으로도 더 늘어나고 그래야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인구가 줄고 있는 나라인데 그나마 외국인들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라면 소멸이 유일한 종착지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TV에 나오는 한국말 잘하는 매력적인 사람들만 우리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편리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외국인들을 차별하거나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는 건, 우리가 나라 밖에서 겪을 그것과 다르지 않다. 거기에 굳이 소득순위나 나라의 위상을 따지는 건 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조건들이 없었던 과거의 우리 모습을 통째로 부정해야만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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