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은 밤새 식어버린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담소로 하루를 시작하셨던 것 같다. 아직도 창밖은 어두운 새벽인데 부엌에서 들려오는 두 분의 이야기가 마치 자장가처럼 방문을 타고 이불속을 파고들어 내 귀로 들어오곤 했다. 두 살 터울 오빠가 1등을 해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 바로 밑의 동생이 옆집 애랑 싸워 이마에 상처가 났다는 이야기 등…. 잠결에 들려오는 두 분의 정담(情談)을 듣다 보면 어느새 잠은 달아나고 기분 좋게 일어나 나의 하루를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는 새해가 시작되면 늘 열쇠 달린 다이어리를 사 들고 들어와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계획표를 세우곤 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고 세상사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 보니 새해는 그저 새털처럼 많은 날 중의 하루일 뿐이었다. 내가 시간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을 두서없이 쫓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땐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아이는 어느새 키가 큰 성년이 되어 있었고 부모님은 연로하셔서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한 움큼의 약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미생’ 속 나래이션 한 부분이 생각난다. 바둑만을 세상 전부로 생각한 주인공이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을 현실적으로 잘 그렸다는 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장인 그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것이 정말 기분 좋다고 했다. ‘내가 문을 연다’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어릴 적 동네 문방구 아저씨는 문을 열면 언제나 수도를 틀어 가게 앞을 청소했다고 하는데 그는 쾌청한 느낌의 그 골목길이 너무 좋았고 그 길을 통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 아저씨처럼 그가 문을 열고 하루의 시작을 결정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며 나래이션은 이어진다.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대사였다. 그 장면이 오늘 문득 생각난 것은 늘 건성건성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던 ‘새해’라는 개념이 어느 날부터인가 의미를 달고 싶은 그런 날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하루를, 나의 한 해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이 실행으로 옮겨져서 끝까지 나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최소한 새해 즈음만이라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옆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첫 하루의 문을 연다.
엊그제 한 신문사 지면에 실린 사설에서도 울림은 왔다. 미국 역사상 인간의 삶에 대한 최장기 연구 프로젝트인 ‘하버드대 성인 발달 연구’의 네 번째 책임자인 정신과 의사 월딩어 교수는 85년간 쌓아온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인생에 있어 오직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들과의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올해는 직장에 휴가를 내서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철마다 여행을 다녀야겠다. 꽃이 피면 나들이를 떠나고 푸른 잎에 고운 물이 들면 또 만사를 제치고 길을 나서 보리라.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내라 닦달하지 않고 앞집에 홀로 살고 계시는 어르신의 하루를 좀 더 세심히 살피리라. 무엇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즐겁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한해로 첫 시작의 문을 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