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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권력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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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1.02 14: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라디오에서 아이들이 토론회를 열었다. 회의를 마치고 그 아이들이 본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어른들이 생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방을 헐뜯고 남의 말을 차단하는 게 보기 흉하다고 했다. 국회에서 회의는 멱살잡이하고 서로 밀고 당기며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다. 아이들의 의젓하고 정확한 의견이 국회의원들 귀에 들어가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여전히 국회는 난장판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주장에 충실한 위정자들. 선거철이 되면 하나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작금의 행태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만을 위한 행동 같다.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는데도 그건 뒷전이다. 북한은 위협을 가하고 있고 이웃 나라의 전쟁으로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다. 나라를 위협하는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로 국민은 힘들다고 난리인 데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선거 때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90도로 인사할 때는 언제고 그들의 어깨에는 지금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상대를 헐뜯는 현수막도 걸렸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넘어간다. 정치에 대해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저렇게 싸움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여당도 야당도 모두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면서 나 먼저 빠져나오겠다고 싸우는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저 자리에서 큰소리치는 걸 보면 권력이 좋긴 좋은가보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겼다. 국회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이란 게 있어서 상정한 안건이 부결되면 회기 중에는 다시 상정할 수 없는 게 법이다. 농협법도 그런 줄 알았다.

농협 조합장은 원예 육묘장을 한다고 했다. 작년에 총회에서 예산 심의가 통과되었다. 계획서도 없이 말로만 통과시킨 것이 발단이었다. 지난달에 육묘장에 대한 예산이 이사회를 거쳐 대의원총회에 상정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작하자마자 2억이 넘은 적자라는 것이다. 4년 동안 세운 계획서에 10억이 넘는 적자란다. 적자가 나는 사업을 왜 하느냐고 했더니 정부 예산 24억 원을 책정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흑자가 나는 것도 아니고 조합원에게 싸게 육묘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라면서도 해야 한다고 고집이다.

애초 예산 심의를 받을 때 계획서를 제대로 올려서 보고했더라면 이런 일을 없었을 것이다. 일을 거꾸로 하더니 그건 본인의 실수라면서 그래도 가결해 달란다. 몇몇 대의원이 반대 의사를 피력했고 안건은 투표로 부결되었다.

부결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다시 똑같은 안건을 상정하니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소식이 들려온다. 조합장이 몇몇 이사들과 함께 가결해 달라며 밥을 사주고 전화했단다. 다시 올린 안건계획서에 적자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 제시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125 수박 농가 중 33 농가만 육묘를 이용한다고 했다는데 그 시간에 반대하는 농가를 찾아가 육묘를 선택해 달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뒤에서 속닥거린다니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의심을 할 수밖에.

대의원은 조합원을 대표해야 하고 이사는 대의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의원이 부결시킨 안건을 다시 안건 상정한 이사들도 이해할 수 없다. 또 조합장과 같이 전화하고 밥을 사주러 다닌다니 이게 어느 시대에서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소금 먹은 사람이 물켠다고 다시 상정한 안건이 결국 가결되었다. 반대한 세 명의 대의원만 답답한 마음을 피력했을 뿐 소금 먹은 사람들의 행동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이 공짜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인데 보조받기가 어렵다며 승인된 보조금 때문에 적자 나는 사업을 강행하는가. 안건만 통과시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얼굴.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가결된 것에 안도하는 부끄러움 모르는 조합장의 얼굴을 보니 혐오스러워진다. 조합장과 이사들이 책임진다고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인가.

나는 불같은 성격이다. 첫 번째 총회에서도 잘못을 이야기했고 두 번째 역시 반론을 펼쳤다. 미안하다면서도 처음이라 서류 준비도 잘못하는 실수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한단다. 임기도 다 되어 가는데 해결책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한다는 말인지.

모 조합에서는 조합장의 성 추문 사건이 보도되었다. 참다못한 직원들이 신고했단다. 신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공언하고서는 하나씩 불러서 신고자를 알려고 했다고 한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고 거듭되는 권력 과시로 직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니 그런 인성으로 어떻게 조합을 책임진단 말인가.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으로 어이없고 답답하다.

금년에 전국조합장 선거가 있다. 정말 일 잘하는 조합장을 뽑아야 할 텐데. 또 소금에 약한 사람들이 실력도 없는 후보자를 찍을까 걱정이 된다. 조합을 위한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정으로 조합을 발전시키는 사람. 권력이라 생각하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조합원의 이익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제대로 된 조합을 대표하는 사람이 선출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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