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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지방의 추억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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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7.17 17: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장난기가 심했던 유년 시절 문지방에 올라타며 안방 문지방에 올라서는 것을 좋아했다. 발바닥 한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인 장심(掌心)을 꾹 눌러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그때도 터득했나 보다. 문지방을 밟고 서면 왠지 제법 키가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지방을 밟고 문설주에 기대어 안방과 마당을 내려다보던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 속의 나는 안방에 큰 대자로 누워서 단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와 마당 모서리에서 빨래하는 어머니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문지방을 밟고 서 있는 나는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소외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반면 어느 쪽에도 매이지 않을 자유를 손에 쥔 것 같았다. 문지방에 서 있는 나를 행해 어머니는 영락없이 크게 소리치셨다. “내려와라, 복 나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꾸지람이 귀에 생생하다.

문틀은 아랫부분에 있는 문으로 안팎의 경계 역할을 하는 낮은 판 모양으로 되어있다. 이를 문지방이라고도 한다. 문지방은 밖과 안의 경계가 분명하다. 밖은 춥지만, 문지방 안은 편안함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하다. 추운 겨울 썰매를 타다 귀가해서 안방의 문지방을 넘으면 구들장이 장작불에 달아 온몸을 녹여주곤 했다. 온돌로 따스하고 평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망설임 없이 아침 일찍 테니스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테니스를 할 때 실력이 우선이겠지만 파트너끼리의 호흡이 중요함을 실감한다. 테니스를 하면서 실력이 우수한 사람과의 파트너라 할지라도 게임을 하면서 잘 풀리지 않는다고 게임이 어떻다느니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하며 실점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과의 시합은 거의 필패가 되기 일쑤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해도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파트너를 만나면 즐겁기도 하고 승산이 높다. 더욱이 5:0으로 거의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어도 한시라도 방심하면 점수가 역전이 되는 것을 왕왕 본다. 그러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문지방을 넘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도 문지방과 같다. 우리 앞에 놓인 문지방은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성장을 돕는다. 우리가 인생길에 만나는 슬픔, 좌절, 분노, 외로움, 가난, 절망 등은 그 순간에는 너무나 커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나고 보면 그 고통의 크기만큼 성장한 자신을 보게 된다.

단절의 틈바구니 안에는 소통이 존재한다. 아무리 높은 담이 둘러쳐져 있더라도 열린 문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문이 열린다. 돌쩌귀에 불이 나듯 드나드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이처럼 문지방을 넘나드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문의 가세를 엿볼 수 있다.

한옥마을의 돌담길을 둘러보노라니 돌담 쌓은 이들의 솜씨뿐만 아니라 넓은 마음마저 눈에 보이는 듯하다. 큰 돌은 큰 돌대로 바닥에 놓아 중심을 잡고 반듯한 돌은 발길이 많이 닿는 대문 문지방에 놓였다. 삐죽한 돌은 세로로 놓여 돌담의 운치를 더하고 작은 돌은 작은 대로 사이사이 빈틈을 메운다. 못생긴 돌, 잘생긴 돌, 찌부러진 것, 번듯한 것, 강가에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 발길에 채우던 돌들이 저마다 자기 몫을 단단히 하며 튼튼한 돌담이 되었다. 돌담 쌓은 이들의 눈에는 몹쓸 것이란 보이지 않고, 손끝에선 버려질 것이란 없는 것 같다. 인격의 문턱도 문지방을 넘는 지혜의 수련이 필요하다.

대만의 인기도서 작가인 ‘확충’은 이런 문지방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통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깊이 좌절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병이 나고,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기를 바란다. 열등감을 느끼고, 괴롭힘을 당하고 깨지는 불행에도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고독과 좌절, 질병과 모욕, 깊은 열등감으로 인해 마음 깊이 슬퍼하고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 순간 크게 성장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아픔을 떨치는 힘을 가지게 되고, 행복한 마음을 갖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 고통도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우리를 가로막는 문지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문지방은 걸리면 문턱이지만 넘어가면 문이다. 그 문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안내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깊이 절망한 후 다시 용기를 내어 문지방을 넘어 가 보자. 우리는 주위에서 인생의 문지방을 만나서 잠시 머뭇거리는 청춘들을 위한 인생의 휴머니즘이 희망의 문지방이 전개되길 바람해 본다.

우리는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문턱을 만난다. 이때 만나는 문턱을 ‘내 뜻’이 아닌 ‘신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불행할까. “신이 누군가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면 그것은 신의 벌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시련도 없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신의 선물이 아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이러한 인생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 앞에 놓인 문턱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문지방을 만나고, 넘어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문지방을 만나고, 그 문지방을 넘어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막상 문지방을 만나면 좌절하고 주저하게 된다. 우리는 그 문지방 앞에서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왜 나는 이런 문지방을 만났을까, 왜 나만을 가로막고 있는 걸까, 이 문지방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문지방을 넘어가면 과연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때로는 문지방이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한 환경이 될 수도 있고, 타고난 장애일 수도 있고, 어리석음, 욕심, 성냄 등 무수히 많다. 이런 수많은 문턱의 문지방은 내면의 성장을 요구하고, 내가 성장하면 외부의 상황도 바뀐다. 결코 문지방을 넘어갈 답은 외부에 있지 않다.

인생길은 길고 길다. 좌절과 시련을 잘 이겨내고 나서 문득 고개를 돌려 보면 깨닫게 된다. 예전에 겪은 상처와 눈물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따지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세세하게 헤아리면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돌을 쪼개는 비법은 한차례 세게 치는 게 아니다. 그 전에 만들어 놓은 실패처럼 보이는 수천 번의 망치질로 쪼개진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돌을 쪼개는 그것과 마찬가지다. “걸리면 문턱이지만 넘어가면 문이다.” 성공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남보다 재물이 많아야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큰 불편 없이 마음 편히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외부 조건에 달린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문지방을 넘는 것도 이와 같다. 문턱은 걸리면 문턱이지만 넘어가면 문이다. 문은 새로운 곳으로 우리를 연결해 준다. 누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문지방을 넘어간다. 우리는 함께 용기를 가지고 문턱을 넘어 보자.

다가올 겨울의 문턱에서 빗물을 삼키는 대지의 마음으로, 품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추운 사람들에게 따듯함을,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차가운 비가 아닌 푸근한 눈으로 내렸으면 좋겠다. 펑펑 온 누리에 하얗게 쌓여 아픔도 상처도 모두 덮어버렸으면 좋겠다. 날카로운 초겨울 추위도, 눈 내리는 한겨울 추위도 어차피 우리가 견뎌내야 할 추위라면,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안고 갈 수 있는 추위가 되기를 바란다. 춥지만 그 속에 따뜻한 이야기를 꽃피우고 서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며 흰 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자.

문지방을 넘어야 따스함이 있다. 문지방을 넘어야 평화가 있고 승리가 있다. 늘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문지방을 넘는 우리의 동병상락(同病相樂)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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