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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초대석-대전시 무형문화재 한자이 선생

“모두가 하나로 마음 모았을 때 아름다움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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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11.27 19:47
  • 기자명 By. 김송희 기자

 

‘소리를 시작 하겠다’혹은 ‘소리를 시작해야 한다’라는 출발점은 없었다. 그저 소리가 삶 속에 스며있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보고 듣고 자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옆집 불당(佛堂)에서 들려오는 불경(佛經)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불가(佛家)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소리가 돼버린 대전시 무형문화재 한자이(韓子伊) 선생을 만났다. <편집자주>

 

- 한자이(韓子伊) 선생님, 우선 많은 사람들이 가곡(歌曲)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가곡(歌曲)은 조선시대 상류사회에서 애창된 시조 및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에 드는 성악곡으로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합니다.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 가곡은 피리·젓대·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 반주에 맞춰 불립니다. 전통가곡은 16박 또는 10박의 장구장단 반주에 의해 연주되고, 우조(羽調 : 판소리·산조에 쓰이는 조의 하나)와 계면조(界面調 : 한국의 고유 음계)로 짜여 졌으며, 남자 26곡과 여자 15곡 총 41곡이 한바탕을 이루고 있어 시조와 가사에 비해 그 예술성이 뛰어납니다. 가곡의 기원은 조선 전기이며, 현재의 가곡은 말기에 형성된 것으로, 조선 후기 만대엽(아주 느리게)과 중대엽(중간 느리게)이 차차 쇠퇴함에 따라서 삭대엽(느리게)이 점차 성행하게 됐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곡은 삭대엽(느리게)이 다시 가장 느리게(12분), 중간 느리게(6분), 느리게(4분) 세 가지로 나뉘어 불러지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가곡(歌曲)을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전 저의 시작은 가곡(歌曲)이 아닌 소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나의 어느 시점이 소리를 시작하는 지점 이었을까’, 혹은 ‘언제부터 소리로 나 자신을 이루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을 종합해 보면 제 소리에 대한 모든 첫 시작점은 저의 ‘아버지’인 듯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저의 어린 시절 속 아버지는 항상 음악과 함께 하신 분이셨습니다. 흥이 많은 어르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늘 소리를 내셨고 악기를 연주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느낄 때 쯤 인 것 같습니다. 이미 그때는 저도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 선생님께서 가곡(歌曲)을 시작하게 된 것은 환경과 많은 연관이 있는 거네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밥을 먹는 것을 ‘이것은 삶의 일부야’라고 인식하고 먹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삶인 것처럼 말이죠. 저도 음악을 ‘이것은 내 삶의 일부야’라고 인식하고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습니다. 음악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환경을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덕분이죠. 가끔은 아버지께서 소리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소리가 아버지의 몸을 빌려 나온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음악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저의 음감이나 음악적 재능 역시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더불어 어린 시절 옆집이 작은 불당인지라 스님의 염불을 외는 모습과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불가(佛家)에 뜻을 두기도 했습니다.

 

- 가곡(歌曲)을 접하기 전, 불가(佛家)에 뜻을 두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불가(佛家)에 뜻을 둔 것은 가곡(歌曲)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경(佛經)소리와 가곡(歌曲)이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더욱 어려움 없이 가곡(歌曲)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불경(佛經)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그 꼬맹이는 뭐가 그리 좋았을까요.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시간마다 스님께서 불경(佛經)을 외시는 모습과 그 소리를 보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린마음에 왜 그리도 그 불경소리가 마음에 새겨지는지 몰라 ‘이 길이 내 길이구나’하고 생각했었죠. 그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가곡(歌曲)을 하면서 ‘노래는 즐거우면서도 질탕치 아니하고, 구슬프면서도 상심케 하지 아니 한다’라는 것, 즉 마음의 중용(中庸)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 불가(佛家)에서도 중요시 생각하는 점이기에 ‘내가 이토록 쉽게 가곡(歌曲)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불경(佛經)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부분은 논어의 팔일편(八佾篇)에 나오는 樂而不淫 哀而不傷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데요.

▲그렇죠. 저는 추구하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논어의 樂而不淫 哀而不傷 (낙이불음 애이불상)은 즐거워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으나 그 속에 음탕함이 있다면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슬퍼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으나 그 슬픔으로 인해 어떤 상처가 생긴다면 마음의 병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즐거움과 슬픔이 그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뜻하는 것으로 세상만사가 모두 내 탓이니 적당히 즐기고 슬퍼하자’라는 옛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가곡(歌曲)에 담겨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선생님께서 꿈꾸는 인생의 모습이 가곡(歌曲)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싶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저는 가곡(歌曲)이 추구하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가곡(歌曲)을 하기 위해서 가장 철저히 준비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조금만 슬퍼도, 조금만 기뻐도,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목소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목소리에 모든 감정이 담겨져 나오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내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죠. 기쁨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물론 세상이 변화하고 한 시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만 요즘은 도(道)를 넘어섰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보다는 타인의 시선이 더 중요하니까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는 시간에 이용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요즘 개인주의라고 말을 하지만 정작 진지하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 선생님께서 대전시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시에서 가곡(歌曲)의 보존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기쁘시겠지만, 지난해 매사냥 및 대목장(大木匠)과 더불어 가곡(歌曲)이 유네스코에 지정된 기쁨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우선 대전시가 가곡(歌曲)을 무형문화재로 선정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가곡은 시조나 가사보다 보다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문화임이 틀림없기 때문이죠. 물론 이 가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식의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연륜 있고 경험이 많은 훌륭한 악기장들과의 수많은 연습을 통해 보다 아름답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연을 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합니다. 가곡(歌曲)은 혼자 하는 음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마음을 모았을 때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 역시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세계의 기준에서도 마땅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입증한 것 같아서 매우 기뻤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곡(歌曲)이라는 종목 자체가 등재된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가곡(歌曲)을 하는 무형문화재가 등재된 줄 잘못알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많은 분들이 정확히 아셨으면 좋겠네요.

 

- 가곡(歌曲)이라는 종목의 무형문화재로 힘드신 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힘든 일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거나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요. 가곡(歌曲)이라는 종목은 혼자 할 수 없는 음악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제외하고 최소 6~7명의 악기장들이 함께 어우러져 내는 음악이 바로 가곡(歌曲)입니다. 가곡(歌曲)에는 대금·세피리·해금·거문고·가야금·장구 등의 소리가 함께 이뤄져 소리를 내며 때로는 앙금이나 단소 등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함께하는 악기장들 역시 많은 연습시간을 투자해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어우러짐을 선보여야 하니까요. 시(市)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부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곡(歌曲) 뿐 아니라 사물놀이, 판소리, 농악놀이 등 우리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무형문화재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이지요. 모든 무형문화재들이 꿈꾸는 것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올곧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충족할 만한 지원이지만 모두가 공연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한명만의 조건을 충족해 주기 어렵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무형문화재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제가 꽤 오래전 여창 가곡(女唱歌曲)을 알리기 위해 앨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땐 노래를 하기에 최상의 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을 수양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 당시에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약속에 의해 진행됐기 때문에 아쉬움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아쉬움이 해소되지 않네요. 제가 좀 더 제 자신을 다스리며 노래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고, 또 훌륭하신 악기장들과 함께 아주 멋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저 자신을 수양하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더 많이 사람들에게 가곡을 알리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네요. 물론 예전만큼 체력적으로 좋지 않아 많은 강연을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하다보면 적어도 지금 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가곡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꿈을 간절히 바라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가곡(歌曲)이 지향하는 바가 제 삶 속에 수묵화처럼 스며들었으면 하네요.

/김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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