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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림자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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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3.13 14: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하여 생기는, 물체의 검은 형상을 그림자라고 한다. 그림자는 곧게 나아가는 빛이 불투명한 물체를 만나게 되면서 반사되거나 흡수되면서 불투명한 물체 뒤에 빛이 닿지 못한 부분에 생긴다.

그림자는 햇빛을 받을 때 반대쪽에 생기므로 아침에는 그림자가 서쪽으로 길게 생기며 해가 높이 올라갈수록 그림자는 차차 짧아지며 위치도 바뀐다. 점심때가 되면 제일 짧아지고, 해 질 무렵에는 동쪽으로 긴 그림자가 생기며 달빛이나 불빛에도 생긴다. 또한 그림자는 빛을 가린 물체의 모양대로 생기는데 짙은 그림자와 옅은 그림자가 있다. 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물체의 그림자는 짙고, 빛이 비치는 물체의 그림자는 옅다. 또 그림자 비치는 장소가 같을 때는 물체가 빛에서 멀어질수록 그림자는 짙고 작아지며, 가까워질수록 그림자는 옅고 커진다. 그리고 빛이 강할 때 그림자가 짙고, 약할 때는 그림자가 옅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그림자가 잘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민속놀이도 있는데 그림자놀이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자주 정전이 되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무서워하는 우리 형제들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촛불을 껴 놓고서는 마술을 보여주신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우리보다 아버지께서 더 들떠 신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불빛 가까이에서 손을 움직여 방 문짝이나 벽에 혹은 천정에 아버지의 한 손 또는 두 손으로 여러 모양의 그림자를 나타나게 하셨는데 나의 기억으로는 토끼, 강아지, 쥐, 독수리, 꼬부랑 할머니가 잔소리하는 모습을 주로 표현해 보이셨다. 인도에서는 이를 손가락 예술(finger art)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하며 수련을 쌓은 전문 예능인들도 있다고 한다.

그림자 중에는 산기슭 아래로 드리워지는 산 그림자도 있고 연못에 비치는 그림자 영지( 影池)도 있다. 경주 불국사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데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도 한다. 즉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것으로 여기에는 슬픈 설화가 전해져오는데 아사달과 아사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백제 최고의 석공 아사달은 석가탑을 짓기 위하여 3년 동안 신라에 머물렀는데 아내 아사녀는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불국사로 달려왔었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날 수 없었는데, 대신 탑이 완성되면 불국사 근처의 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해서 아사녀는 못에 탑 그림자가 비치기만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못에는 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고 그리움에 지친 아사녀는 결국 연못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탑을 완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석가탑에는 원래 그림자가 없었다고 하였고 그래서 일명 ‘무영탑(無影塔)’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Carl Gustav Jung)은 그림자 (shadow)를 의식적인 자아 자체가 식별할 수 없는 성격의 무의식적 측면을 뜻한다고 하였다. 또한 융은 ‘그림자’를 ‘페르소나로 인해 억압된 다른 자아’라고도 설명하였는데 보통은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만, 간혹 자신이 억제할 수 없는 충동적인 요소들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자라고 하였다. 즉 어떤 성격이 입력되었을 때, 그 성격을 자아가 받아들이면 자아와 페르소나의 일부가 되고, 거절하면 무의식으로 들어가 그림자가 된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자존감이 상승하고 좋은 결과가 주어질 때 자신감도 생기고 삶의 질도 윤택해진다. 그리고 행복해하는 모습과 듣기 좋은 친절한 목소리를 경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칼 융의 측면에서 사람의 자아를 바라본다면 본연의 그림자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 진실인 것 같지만 감추어진 아픔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도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늘 나의 주인만을 위하여 한평생 잠시도 비켜 살지 않은 충실한 섬김이 아름다운 나의 동반자 그림자가 많이 감사하다! 부디 나의 그림자가 내가 잠들 때만큼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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