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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 (전)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전)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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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6.07 16: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 (전)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전)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80년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았던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가요가 있다. 당시 출연했던 음악회가 끝나고 공연장을 나올 때 자주 흥얼거리던 가사.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객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뜨거웠던 무대와 객석의 열기가 잠시 로비로 옮겨졌다가 이내 사라진다. 분장실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온 로비는 어두워져 있고 공연장 앞 가로등만 덩그러니 비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노래를 흥얼거린 적도 있다. 1년에 한두 번 무대를 밟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수시로 무대를 서던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그 느낌은 평생 여운으로 남아있다. 특히 망친 연주보다 뿌듯한 연주를 끝내고 나올 때 더욱 강렬했다.

88년부터 오페라단과 음악협회 주최 공연들을 만들어가는 일에 관여하였고 이런 저런 이유로 21세기를 여는 즈음부터 대전 유일의 클래식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삶의 공간이 무대 위에서 무대 뒤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기획자의 역할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 단순히 공연을 유치해서 티켓을 판매하며 흥행을 담보하는 대중공연 기획사들의 역할과 클래식과 같은 순수예술 무대를 만드는 기획사의 역할은 차이가 크다.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 전문연주자들의 행위를 돕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대 위의 연주자들보다 더 전문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페라와 같은 종합예술 무대를 만들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개인이나 소규모의 무대를 만들 때도 예외가 아니다. 홍보와 공연진행 등과 같이 겉으로 들어나는 일들 외에 공연 제목을 정하고 홍보 카피를 작성하거나 연주자들의 서술형 프로필을 작성할 때도 있다. 출연자가 많을 때는 프로필을 통일성 있게 정리해야 하고 포스터와 전단, 팸플릿에 수록하는 텍스트와 사진 자료도 정리한다. 겸손한 가운데 돋보여야하는 것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문장으로 연주자와 공연을 설명하는 글을 작성한다. 프로가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는 관객을 상대로 자신을 마케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부담스럽다. 연습과정이 어렵고 쉬움을 떠나 결과에 만족할 때도 있고 때로는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공연장을 도망 나오듯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다. 무대는 무섭다. 그만큼 관객들은 냉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대에 설 때나 기획자가 돼서 공연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연주자와 관객을 위해서, 나의 자존감을 위해서 기획과 진행에 심혈을 기울이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독자들은 공연장에서의 기(氣)를 느껴보셨는지 모르겠다. 객석의 맨 뒤에서 무대로 향하고 있는 기(氣)를 느낄 때의 희열. 매번 적자를 거듭하면서도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그 희열로 자위 받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 적자도 나고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얻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술에 최고만 있을 수 없지만 관객은 항상 최고를 원하거나 어느 정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길 원한다. 늘 겸손하며 무대를 두려워하는 예술가가 많을수록 관객도 늘고 행위도 잦아지는 선순환구조가 이루어진다. 관객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자기만족을 위하는 예술가가 많아진다면 관객들이 그들의 행위를 외면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무대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대전에는 전문적인 무대 스태프들이 근무하는 공연장이 두 곳이다. 2003년 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과 2015년 개관한 대전예술가의집 누리홀. 그들 또한 예술가 못지않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단순히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개념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행위를 돋보이게 하거나 관객에게 최선의 감동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또 한 부류의 예술가이다. 방송에서 단 몇 초의 시간이 짧지 않듯이 무대에서의 찰나(刹那)를 판단하는 진행 스킬은 공연 품격을 좌우한다. 공연 기획 경력자를 채용할 때, 포스터 몇 장과 스카치테이프를 주고 벽에 부착하게 시키거나 봉투와 풀을 주고 우편발송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경력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진담 섞인 농담을 하곤 한다. 무대 스태프도 마찬가지이다. 무대 전환을 위해 걸어 나가는 단순한 움직임을 보거나 무대 조명이 움직이는 속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질이 아니라 음량만 들어도 그들의 경력과 전문성을 느낄 수 있다.

기획자와 공연자, 스태프들은 유기적 관계의 전문가이며 예술가이다. 공공재인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문성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가지고 헌신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를 흥얼거리며 공연장을 빠져나온 밤이다.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 (전)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전)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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