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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백년손님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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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5.28 15: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딸과 함께 온 친구는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해맑은 얼굴임에도 안절부절하는 모습이다. 딸이 사귄다고 했을 때 연하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취준생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너무 격식을 차려 이것저것 묻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무심한 듯 그냥 집에 놀러온 딸의 친구인 듯 대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영 편치 않다.

어느 부모가 직장도 없는 친구를 사위로 맞이하려 할까. 나는 속물인 엄마인지라 그 애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조교로 있는데 딸이 나중에 학원을 차릴 거라면서 혼자는 벅차므로 학원 강사로 진로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맥이 탁 풀린다. 선한 얼굴도 맑은 미소도 무능력하게만 보인다. 딸이 좋다고 하기에 마음을 접었지만, 모든 게 못마땅하다.

오랫동안 딸의 결혼을 꿈꾸어 왔는데 짜증이 났다. 나이 어린 사람을 데리고 온 것도 못마땅한데 말이 좋아 취준생이지 백수 아닌가. 딸은 희망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내 눈엔 어리석음으로만 느껴진다. 내가 이런데 저 친구의 부모들은 어떨까.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그 친구의 부모님은 취업했다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더니 결혼한다고 하더라며 뜻밖의 소식에 놀랐다고 한다. 직선적인 성격인 나는 그 친구의 부모에게 어떻게 연상인데 반대를 하지 않았냐고 했다. 며느리 될 사람이 연상인데도 반대하지 않아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했다.

아이들 일은 자기들이 결정하라는 주의라는 그 친구의 부모들은 우리 딸을 보니 그냥 좋고 예뻐서 반대할 생각은 안 했단다. 요즘은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라지만, 내가 그 친구의 엄마라면 과연 허락했을까.

집을 구하고 살림을 들이고 함께 살라고 했다. 나이가 많은 딸은 지금 아기를 낳아도 노산이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자기들의 삶을 즐기고 힘든 일은 피하려는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들은 출산을 하지 않으려 한단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갖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혹시나 우리 애들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취한 조치이다.

구내염으로 고생하는 나는 병원에 갔다가 아이들이 살 집으로 갔다. 입주하기 전에 팥죽을 쑤고 금강경 독송을 하며 아이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햇볕이 잘 들고 따뜻해 보여서 추위를 많이 타는 딸에게는 잘 맞는 집 같아 다행이다. 그 친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도 일을 하는 내가 주책없어 보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인데 결국 그 말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살림을 들이는 날. 딸은 바쁘다고 출근하고 그 친구는 집에서 주문한 살림살이를 맞는다. 요즘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또 다시 느낀다. 가전도 최신이기도하지만 큰 것을 선호한다. 좁은 거실에 대형 TV가 들어왔다. 눈의 피로가 심할 것 같으니 작은 것으로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부족함을 모르고 사는 요즘 애들이라 낭비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대형 TV를 보면서 너희 집에서 영화를 보러와야겠다고 했더니 오셔서 오래 있다 가라고 한다. 너희한테 오면 일해야 하니 안 온다고 했지만, 오래오래 있으라는 말엔 기분이 좋았다. 빈 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나도 늙나 보다.

그 친구가 어려도 딸이 동안이라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 보여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부간의 나이 차이도 적으니 세대차이가 나지 않겠지. 쓸데없는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자식이 크면 바로 독립을 시켜야 하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이라 그런지 아직도 품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짝을 맺어주고도 품고 있다. 얼마나 더 어리석은 마음이어야 하나. 이런 나의 집착으로 자식이 힘들어 할까 걱정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더니 성에 차지 않다고 불만할 땐 언제고 사위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에게 보란 듯이 멋진 사람이 되어 나를 흡족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내 자식은 꽃길만 걸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다음에 올 땐 사위라 부르며 술 한 잔 기울면서 허심탄회한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아들 하나 얻었다는 생각으로.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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