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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둥굴레를 닮은 그녀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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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24 16: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주전자에 둥굴레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냄새가 구수하다.둥굴레는 우리살림살이에 아주 밀접한 식물이다 보니 둥굴레 차도 습관처럼 마신다. 이 또한 매우 좋은 자양강장 식품이며 약제이다. 둥굴레를 처음에는 황계(黃鷄)라 불렸는데 당대의 신의 화타가 황정(黃精)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동양사상에서 황색은 땅을 가리키므로 황정은 ‘땅의 정기’ 혹은 ‘정력을 튼튼히 하는 노란색의 약초’란 뜻이다. 중국의 한 무제가 어느 마을을 지나다 밭일을 하고 있는 한 노인의 등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 한다. 어린 아이와 같은 얼굴에다 희고 고른 치아와 검고 윤택한 머리칼을 날리는 것이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하여 기인이다 싶어 물어보니 “별다른 비법은 없습니다. 그저 하늘이 준 수명대로 사는 것뿐이지요. 단지 젊음과 정력은 야산의 정기를 듬뿍 간직한 황정을 캐먹은 덕인 줄로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둥굴레의 어린순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줄기는 생식, 굽거나 쪄서 먹기도 하고 말려서 약이나 차로 마신다. 뿌리는 영양가 높은 자양식품으로 단맛이 있고 전분이 많아 흉년에는 구황식품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올 가을에는 뿌리를 채취하여 둥굴레 차를 만들어 볼까 한다. 사슴이 즐겨 먹는다는 황정은 약주로 만들면 그 작용이 더욱 강해지고 이 술을 선인주(仙人酒)라 한다.

이처럼 둥굴레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으면서도 어려울 때 민초들의 허기를 면해 주고 풍요로울 때는 서민의 건강을 지켜주던 식물이었다. 지금도 산속에 들어가면 눈에 띄기도 하고 야생화에 취미가 있는 이들은 화분이나 화단에 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캐어서 차를 만들어 먹는 사람은 드물다. 둥굴레는 중국산이라도 이미 먹기 좋게 만들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쉽게 구할 수 있다.

어쩌다 우리 집까지 와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둥굴레가 너무 사랑스럽다. 저기 앞마당에서 새싹이 올라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상기온으로 벌써 꽃망울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평범하면서도 고고한 둥굴레의 하얀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정한 여인이 떠오른다.

몇 년 전 그녀와 함께 긴 상담수련을 받았다. 그녀는 수련을 진행하면서 수련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했다. 개성이 강한 수련생들 비위를 다 맞춰갔고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늘 즐겁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분명 고부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도 위트가 넘치고 남편 흉을 보았는데도 흉이 아님을 느끼게 만드는 그녀는 우리를 많이 웃게 만들었다.

수련 마지막 날, 그녀와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길가가 움푹패어 있었다. 깊이 파여진 곳에는 철이 놓여있었고 이런 길을 밟고 지나다 바퀴에서 그만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내려서 보니 바퀴가 펑크가 나 있었다. “길은 식당주인이 정비해야 되는 것 아냐? 손님들이 오가는 차량 길을 어떻게 저리 해놓고 식당을 운영해.” 자동차보험 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식당 주인의 성격을 들먹였다. 나뿐만이 아니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제일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사람이 나빠서라기보다 원래 자기중심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자신보다 내 입장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긍정이다. 나보다 어린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살고 있다. 아직 난 먼 것 같다.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둥굴레에 매력을 흠뻑 느끼는 요즘이다. 마당 한 구석에 무더기로 있어 손이 젤 안 갔던 식물 둥굴레, 늘 그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든든하게 피고 지고 있다. 꽃 봉우리인데도 벌써 벌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유백색의 은방울 연주가 시작되었다. 잎 겨드랑이마다 두개씩 조롱조롱 매달린 꽃이 앙증스럽고 줄기를 감싼 연갈색의 포(苞)가 분위기를 한층 돋우니 청초하면서도 품위 있는 자태다. 꼭 그녀의 모습 같다. 오늘은 둥굴레를 닮은 그녀에게 동글동글 꽃망울 사진 한 장 찍어 보내야겠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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