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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예술은 번역되지 않는 감동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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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12 15: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지면을 통해 무심코 사용하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화예술’이란 단어에 대한 모호함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을 밝힌 적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예술이 무엇?”이라는 의문을 던지고 정의를 내리는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많았지만 대중들은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말로나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론적으로는 ‘예술’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학자나 예술가들은 있었지만 대중들은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설명은 못 할지언정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우선이라 예술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예술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논리가 확장되어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기준에 대한 고민과 성찰로 바람직한 예술관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는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의 세 가지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방론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 무엇인가를 모방하여 재현하는 활동이 예술이라는 이론이다. 18세기에 성립됐다는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인 ‘파인 아트(fine art)’로 일부 설명하기도 한다. 이 모방론은 18세기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하였지만,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영향력을 잃는다.

모방이나 재현보다는 예술가의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의 표현으로 만들어지는 산물이 예술이라는 이론인 표현론이 탄생한다. 표현론은 예술가의 기능으로 감정을 전달하거나 정리하는 매개활동으로 인지되어 모방론의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부터 낭만주의 예술까지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 또한 추상 예술의 등장으로 힘을 잃었다.

표현론으로는 예술가의 감정 표현을 읽어내기 힘든 추상 예술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예술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 바로 형식론이다. 미적이고 감성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형식을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는 시대. 이 또한 포괄적인 예술의 의미로 모방론과 표현론으로 설명하던 예술의 산물과 행위를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과연 이러한 형식론이 예술을 계속 설명할 수 있을까? 다다이즘(dadaism)과 같이 기존의 모든 가치나 질서를 부정하며 상식을 벗어난 새로운 예술 사조가 나타나면서 형식론의 영향력도 잃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예술은 과연 어떤 이론으로 설명이 될까? 통섭의 시대로 행위자와 수요자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고 예술의 생성과 전달 체계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전문가라고 말하는 그룹에 의해 정리되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비전문가들의 포퓰리즘에 의해 새로운 예술 사조를 지향하는 시대가 되지 않도록 성찰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하는 학자들이나 기존의 예술 행위를 기득 행위로 보는 시각의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해도 진정한 ‘예술가’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필자가 예술행정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할 때 접했던 두 가지 문화 정책이 있다. ‘문화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와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라는 두 개념이다. 예술에 ‘고급’, ‘저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이 모순이지만 ‘문화 민주주의’의 빠른 정착을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밖에 없는 수식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

‘문화의 민주화’는 고급예술을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급함으로써 소수 상류계층의 전유물이던 고급예술을 가능한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대하는데 목적이 있고 ‘문화 민주주의’는 ‘고급’과 ‘저급’ 예술의 이분법을 반대하며 모든 사람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해 스스로 예술을 창조하며 향유할 수 있도록 직접 참여에 비중을 두는 정책 개념이다.

예술의 ‘질(quality)’보다 사회적 형평성을 우선 고려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문화 선진국들이 1970년대부터 ‘문화 민주주의’ 전략을 도입하여 자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무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매우 신빙성 있는 주장이며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에 동의한다.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재하고 인간이 소통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문화’라는 단어를 ‘예술’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예술민주주의’ 개념과 비교 성찰할 필요가 있고, ‘문화의 민주화’ 터전이 안정된 상태에서의 ‘문화민주주의’ 전략을 도입한 문화 선진국을 우리가 사는 나라로 착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몇 해 전, 예술행정가가 되고 싶어 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예술은 번역되지 않는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던 젊은이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톨스토이는 “진정한 예술이란 작가가 진실한 감정을 독자에게 감염시키는 것”이라 했다. 여러분은 어떤 감동과 감정에 감염되고 싶은가? 아직은 ‘문화의 민주화’를 우선으로 한 ‘문화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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