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홑잎나물 사랑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4.10 16: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바람이 몹시 분다.

비도 간간히 뿌리면서 꽃샘추위가 다시 왔는지 기온차가 너무 심하다. 한 며칠 동안 여름날을 뽐내며 일찍 피어난 개나리, 벚꽃 잎이 다 떨어질까 봐 걱정이다. 이에 뒤질세라 친정집 뒤뜰에 심겨진 화살나무에도 홑잎이 어느새 촉이 올라왔는지 잎줄기가 길쭉하게 나왔다. “홑잎을 따려면 부지런해야지 연하고 맛있는 나물을 딸 수 있다. 홑잎이 세기 전에 따야 한다”고 어머니 성화에 비바람을 맞으며 따고 있다. 홑잎은 새봄을 알리는 나뭇잎이다. 두릅이나 엄나무 같은 다른 나무들이 싹을 틔우기 전 벌써 새 순이 난다.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며칠 살펴보면서 어느 정도 자란 잎을 따야 연하고 부드럽다. 그리하지 않으면 잎줄기가 금세 억세져서 삶아도 뻣뻣하다.

어린 순은 소금을 넣고 살짝 데치면 연한 녹색을 띠는데 집 간장과 깨소금 마늘 등 적당한 양념을 넣고 맛깔스럽게 무쳐서 먹으면 입안에는 봄이 가득하다. 그러고도 좋은 효능이 많아 혈액순환, 불면증, 신경안정, 우울증 등 염증치료에 효과적이기도 하다는 데 한 철 잠깐 나오기 때문에 자주 먹을 수는 없다. 예전에는 봄에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있어 나물을 많이 뜯을 수 있었다. 산나물이 한 끼 양식이 되기도 하고 뜯어온 나물이 많으면 삶아 말려 놓았다가 겨울에 묵나물로 먹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은 산나물보다 고기반찬을 더 좋아했지만 산골에 사는 덕분에 산나물을 많이 먹고 자란 것 같다. 지금은 산림 보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산엘 아무 때나 맘대로 올라갈 수 없게도 되었고, 건강 음식이라고 하여 많이 먹고 싶어도 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구경하기가 어렵다. 대신 홑잎, 방풍 같은 많은 종류의 산나물을 밭에서 재배하는 농가들이 있어서 봄나물을 사서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버지 생전에 친정집 뒤란에 심어놓은 화살나무가 퍼져서 매년 홑잎 나물을 제법 뜯는다. 이십년은 넘었을까 오래전 어머니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나서는 어머니 건강은 아버지가 거의 관리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녹즙내리는 일부터 시작하여 농사를 지으며 하루일과를 어머니를 위해 사셨다. 엄마만 챙기지 말고 당신 몸도 챙기며 사셨더라면 하는 속상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 젊은 시절엔 술을 좋아하셔서 어머니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고 하지만, 크면서 부모님을 바라 볼 때 두 분의 사이는 샘이 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아마도 이 화살나무도 어머니가 홑잎 나물을 좋아해서 어머니의 병 치료를 위해 심은 것 같다. 항암효과에도 좋다는 이 나무의 약효가 얼마 만큼 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지런하고 정성스런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대장암은 완쾌되었고 홑잎나무는 여전히 이곳에 그대로 있다.

3년 전 엄마가 정신이 좀 안 좋으실 때, 하루는 일꾼을 얻어 집안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게 한 적이 있다. 집안에 큰 나무가 많으면 안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나. 자목련, 자귀나무, 엄나무 등 덩치 큰 나무들과 명자나무 같은 꽃나무들을 싹뚝 잘라버린 엄마의 이상한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속을 끓인 날이 많았다. 한참 지난 후에나 엄마의 이상함을 이해하면서 병원치료하는 것을 열심히 도와드렸고 지금은 정상수준이 되어 종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은 집안에 나무란 나무는 죄다 베었는데 홑잎나무는 남겨놓았다.정신이 없으셨을 때도 정신이 돌아온 지금도 아버지가 엄마를 위하여 심어놓은 것을 아시는지 보물단지처럼 아끼고 있다. 엄마 아버지가 지금까지 함께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두 분의 인연을 아직도 아버지의 흔적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엄마의 홑잎나물 사랑은 먼저 가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일지도.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홑잎을 훑고 있는 내 마음이 짠하다. 며칠 후면 아버지 기일이다. 홑잎나물 한 접시 올려드려야겠다. 아버지도 많이 좋아하시겠지.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