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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모래시계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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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09 16: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흔들어도 요지부동이다. 혹시나 빨리 내려오려나 보려고 고개를 숙여본다. 아무리 많이 나오게 하려 해도 안 되고 빨리 나오게 하려 해도 처음 그 속도와 양을 유지하며 일정하게 내려온다. 정말 신기한 것이 모래시계다.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내 일에도 남의 일에도 화를 잘 낸다. 한동안 마음의 여유를 부리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니 하기도 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고 마음 닦는 일에 열중했더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런데 다시 화가 많아 졌다.

꼴대로 꼰 드라마도 머리 아픈 뉴스도 보기 싫다. 순정만화 같은 드라마가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된 일인지 마음의 상처만 남는 드라마 일색이다. 그럴 땐 아예 귀도 막고 눈도 감고 싶다.

며칠 전 본 기사로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도 못 쉬게 한다. 자매자살사건 때문이다. 대학원생이 동생의 권유로 보조 배우를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보조출연자를 관리하는 대표가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자랑처럼 떠벌렸다나. 보조출연자를 관리하는 12명이 돌아가며 나쁜 짓을 했단다. 거부하면 욕하고 때리고 협박까지 했다니 그게 금수이지 사람이란 말인가.

경찰서로 가서 고발을 했더니 경찰들은 성기를 그려봐라. 가해자와 분리하지 않은 채 조사를 했단다. 어떤 자세로 성행위를 했는지 묘사해보라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었다니. 도대체 경찰이 뭐하는 자들인지 묻고 싶다. 가해자들은 학생의 엄마한테까지 폭행을 했고 협박까지 하자 고소를 취했다고 한다. 힘없는 자의 설움이 이런 것인가 싶다. 정말 안하무인 세상이다.

결국 학생은 세상을 등졌고 동생마저 자신 때문에 언니가 그렇게 되었다고 언니 뒤를 따랐다. 두 딸을 잃은 아버지마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엄마는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죽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산다며 지금도 가해자 12명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한단다.

그 엄마는 가해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더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본 드라마가 생각났다. 딸이 나쁜 짓을 당해서 죽었다. 아버지는 혼자 수사하다가 4명의 가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에 걸쳐 그들의 뒤를 밟아보니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들을 단죄하는 드라마였다. 만약 그 자매의 엄마였다면 나도 드라마와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요즘은 ‘me too’ 운동으로 지구촌이 시끄럽다. 지금 기사화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던 정치인이 가해자로 법정에 선다. 연극 감독은 많은 여배우에게 나쁜 짓을 해서 고발당했다. 성직자인 신부도, 대학교수도, 법을 제일 잘 아는 검사도, 중. 고등학교 교사도, 연예인도 모두 고발당했다. 세상은 미쳐가고 구역질나는 세상으로 변해간다.

청와대에 국민 청원이 이어져 두 자매 사건을 재조사한다고 한다. 많이 늦었고 힘들고 억울하겠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죄를 짓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회가 어디 사람의 세상이란 말인가. 가해자에겐 합당한 처벌을 하고 피해자의 피눈물은 닦아 주고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회가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봄바람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 소식을 많이 듣고 싶다. 그런데 화나는 소식이 더 많다. 나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열이 오르고 상기되니 사는 것이 답답하다.

세상 탓을 하는 나도 불같은 성격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겠지. 상처를 준 것을 알면 사과했겠지만 상처를 준 것조차 몰랐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모르고도 지은 죄에 대한 참회를 한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 걸까. 화를 내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남의 탓 같다.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내 탓인데 늘 남의 탓이라 한다.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해 보인다.

모진 비바람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꿋꿋할 수 없을까. 어떠한 일에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분하고 여여(如如)한 마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해자도 세상에 나올 때 순수한 모습이었겠지. 모든 사람이 모래시계처럼 늘 한결 같았으면 좋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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