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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자연에 물들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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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4.02 17: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시드니에서와 달리 멜버른에서는 시작부터 좋았다. 우선 기사 겸 가이드가 4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고, 수다스럽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관광지의 역사와 호주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행 내내 날씨도 청량하고 맑았다.

멜버른은 작은 도시라고 했는데, 시내를 벗어나니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방목으로 키워지는 소와 말, 양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작은 마을에 있는 숲 속 산책길을 둘러보았다. 정비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힐링이 되었다. 호주는 땅이 넓어서인지 이동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특별하게 보거나 하는 일 없이 마트도 들르고, 저녁을 먹으며 일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펭귄 퍼레이드를 관람하러 필립섬 펭귄 정보관으로 이동했다. 자연 서식하는 펭귄이 바다에 갔다가 해질녘이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야생의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바다를 끼고 낮은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니 너른 들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야생 알파카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얼굴이 쥐의 모습과 닮았다. 창문을 두드리자 앞발을 들고 물끄러미 보고 있는 모습이 순박해 보였다.

작은 굴에 펭귄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눈을 부릅뜨고 살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괭이갈매기가 먹이를 물고 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먹이가 펭귄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펭귄의 천적은 괭이갈매기뿐만 아니라 사막여우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펭귄을 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와 방법을 알려 줬다.

드디어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놨지만 불빛을 은은하게 비추고, 사진은 절대 찍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펭귄을 찍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생태를 최대한 지키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줄 끝에 매달려 웅성거리며 펭귄의 퇴근길을 따라 다녔다.

바다에서 자기 집을 찾아 어둠이 내린 길을 뒤뚱거리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30cm정도의 크기를 가진 펭귄이 뒤뚱거리며 올라오다 넘어지기도 하고, 멈칫거리다가 옆길로 가서 자기 집을 찾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장아장 걸어서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지금도 그 모습은 사진을 찍어 둔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날은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를 마음껏 보고 누렸다. 영국 BBC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곳’ 중 하나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갔다. 굴곡이 있는 해안선을 따라 파도에 의해 침식된 바위들과 절벽, 바람에 의해 새겨진 바위들을 보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레이트오션로드의 장관을 하늘 위에서 만끽한 헬기투어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최고의 경험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멜버른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짧은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가이드 중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맨 꼭대기에 차를 주차하였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짧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새벽 어둠 빛에 붉은 기운을 푸른 하늘 언저리로 물들이는 일출 직전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저녁노을처럼 보였지만 쪽빛 하늘에 단풍이 든 것처럼 맑고 푸른 기운이 느껴지는 화려한 노을이었다. 서로의 빛깔을 잃지 않고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그 자리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로 물들어갔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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