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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다른 삶을 향해서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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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26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어떤 말을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을 만나기 전, 마음이 요동을 친다. 약속시간이 오래 남았을 때는 설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 게 이상하다. 누가 이런 불편한 자리를 만들었을까.

우리가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상견례 자리다. 상대의 인상이 안 좋으면 어쩌지. 그럴 때 내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면 어떡하지. 교차하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 때 그들이 들어왔다. 도시에서 사는데도 순수해 보이는 부부의 표정에 안도하며 편안해졌다.

40이 낼모레인 딸의 결혼할 인연이 나타나지 않아 속을 끓였다. 선을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곧바로 뒤돌아서더니 이번엔 결혼을 한다고 한다. 연하란다. 연하라는 말에 반대를 하면서 모녀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연하라니 말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그로 인해 두 달 간 소식을 끊기까지 했다.

사위에 대한 내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있었다. 조건이 까다롭기는 했다. 키는 얼마 이상이어야 하고, 사는 정도는 얼마고, 직업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머리는 얼마나 좋아야 하고 등등. 그럴 때마다 딸은 아무래도 결혼하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전생의 인연이 이어진 것일까. 내 조건에 한 개도 맞는 것이 없는 사윗감. 안 만난다고 하더니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나 보다. 화가 났지만 마음을 비운다. 어차피 딸의 인생이라고 억지로 위로한다. 내 기준에 한 개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 손에 잡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이번이 딸에 대한 두 번째 포기다. 첫 번째는 사시를 포기했을 때고, 두 번째는 꿈에도 생각지도 않은 이번 결혼문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가 결혼할 때가 생각난다. 개방적인 나의 부모님에 비해 보수적인 시부모님을 보며 엄마는 속이 상했는지 한 말씀하셨다. “뭐가 부족해서 그 먼 곳까지 가서 고생하려느냐”고. 오냐오냐 키운 딸이 그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나 보다. 다 끝내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내 부모님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보란 듯이 결혼식장과 식당까지 혼자 준비했다. 먼 거리인지라 어린 나이임에도 혼자 결혼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 딸을 위해 상견례를 하고 결혼준비를 해야 한다. 그때의 내 엄마가 속상했던 것처럼 지금 나도 마음이 행복하지가 않다. 내가 걸어온 길을 딸이 그대로 걷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나이가 꽉 찬 딸은 자기들이 다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날짜만 정해주면 자신들이 준비한단다. 웨딩플래너와 모든 것을 상의해서 계획하고 실행하면 된다나. 손수 찾아다니던 준비하던 나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서는 아이가 대학교만 입학하면 부모에게서 떠나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도 간섭하고 걱정하고 늘 자식에게 도움이 되고자 전전긍긍한다. 나도 이제 두 손 탈탈 털고 자기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고 해볼까.

나이만 들었지 어린애처럼 살아온 딸이 결혼하는 것이 기쁘면서도 한편 허전하다. 아들이 결혼하면 심술궂게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 심정이 이래서일까. 이미 오래전에 떠나보냈어야 하는데 아직도 품에 안고 사는 나를 본다.

요즘은 비혼 주의자가 늘어난다. 주변에 보면 나이 많아도 혼자 사는 사람을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취업이 안 되어서일까. 살기가 팍팍해서일까. 캥거루처럼 부모에게 붙어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연하라고 반대는 했지만 혼자 살려고 하지 않고 결혼하려는 딸이 고맙기도 하다.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인품만 본다는 딸의 말에 너무 계획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것은 내 속물적 근성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 또 다른 삶의 길을 가려하는 딸. 전생에 천 번의 만남이 있어야 부부의 연을 맺는다고 한다. 천생연분의 인연. 그 애들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 이어진 것이라고 믿으련다. 부모 품에서 떠나 자신만의 세상을 멋지게 만들어가길 기원하면서 이제는 정말 품에서 떠나보내야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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