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 속으로] 말(言)의 온도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2.19 15: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3월은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일 년 열 두달을 사계절로 구분해 볼 때 3월은 봄의 첫 관문이기도 하지만, 올 해 들어 사고를 두 번씩이나 겪은 지라 더더욱 생동감 넘치는 시간을 기다린다.

1월 중순 쯤 눈이 많이 오던 날 커브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혼자 나무에 차를 들이 받았다. 운전석 문이 안 열리고 앞 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진 대형 사고였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아서 물리치료만 받으러 다녔다. 차 수리는 일주일이 걸렸다. 공업사에서 차를 찾아오고 이틀 뒤 또 사고가 났다. 이번에는 후진하는 차가 내 차를 박아서 조수석 앞부분이 크게 일그러졌다. 가슴이 떨리고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10분 전 상황을 되돌리고 싶은 후회가 밀려 들었다. 조금만 더 방어운전을 했어야 했다는 후회와 이쪽으로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두 번째 사고 때는 과실비율 때문에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상대방 과실이 100%로 인정돼서 수리며 병원치료를 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의 사고를 겪으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고 당한 날 아침에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때문에 더 따뜻했는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 어느 중년의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10년째 언어폭력 및 폭행에 시달리고 있는 사연이 나왔다. 이유는 10년 전 아내가 빚보증을 잘 못 서서 3000만 원을 남편이 대신 갚아 주었는데, 그 뒤로 이어진 경제적 압박과 폭력으로 인해 이혼 상담을 신청한 것이다. 그 사연을 들으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그 날 바로 첫 번째 사고가 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다친 덴 없어?’라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걱정과 위로가 전해졌다. 무뚝뚝한 남편과 아들들이지만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말 한마디가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지를 알 게 되었다.

말(言)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로 곧,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나타낸다. 뜻으로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말(言)에는 생각, 느낌뿐만 아니라 차가움과 뜨거움을 재는 온도도 들어 있다. 진심이 담긴 따뜻한 위로의 말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차가운 말이 있다.

예전에는 욕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폭력으로 보지 않았고, 몸에 상처를 주어야만 폭력으로 보았다. 이제는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언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을 폭력으로 보고 있다. 몇 년 전 초등학교에서 언어폭력에 대한 대처와 신고방법을 교육할 즈음에 그와 관련된 해프닝이 있었다. 방과 후 수업 중 2학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말다툼을 했나 보다.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언어폭력으로 112에 신고한 것이다. 다행히 학교로 확인전화가 오면서 별 일 아닌 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내 수업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찔했다.

평소에 내가 하는 말의 온도는 몇 도쯤일까? 그동안 감지하지 못했던 말의 온도를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가장 미안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기분대로 말하기 일쑤고, 유독 남편에게는 화를 내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많이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체온보다 따스한 말을 건넬 수 있도록 해 봐야겠다. 1도라도 더 뜨거워 질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해서 말에 온기를 더할 참이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