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읽기] 설 명절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8.02.13 15: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며칠만 자고 나면 설날이 온다.

타지에 살고 있는 가족이 모처럼 고향을 찾아와 웃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너나없이 따스한 정과 연대감을 나누고 확인한다. 섣달 그믐날부터 정성을 다해 장만한 음식으로 조상께 차례를 지내며 성묘도 다녀오고 집안 어른께 세배 드리며 자식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고 덕담을 나누며 설날을 보낸다.

설날이 다가오니 내가 세뱃돈을 받던 유년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고향 마을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했다. 절굿공이 높이 치켜들어 절구통 안의 찰떡을 향하여 내리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보며 정답고 따뜻했던 고향으로 달려간다.

애타게 기다리는 설날, 아주 가난한 집이라도 설에는 음식을 장만했고 객지 나간 자식들은 엄마 품 떠났던 병아리처럼 설 쇠러 고향으로 왔다. 텅 비웠던 건너방과 행랑방에 장작불 지펴 데워 놓고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친구들이 모여 이집 저집 방방이 웃음꽃을 피웠다. 뉘 집 이든 간에 이렇게 소소한 것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설날에는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신나서 또래 아이들은 마을 어귀로 슬슬 모였다. 모두 모이면 동네에서 제일 어른 댁부터 시작하여 세배를 드린다. 아침부터 집집마다 다 돌고 나면 점심때가 된다. 세뱃돈 대신 떡과 과자를 한 주머니씩 받아 들고 좋아라 했다. 요즘 설날은 집안 어른께는 당연 예의를 갖추겠지만 시골마을이라도 집집마다 세배하러 다니는 이는 거의 없다. 시대가 변한 만큼 시대에 맞추어 사는 삶이 세련되어졌지만 아쉽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모인 가족 식사 자리에서 큰애가 “이번 설날에는 설 쇠고 성묘 갔다 바로 와야 해요” 한다. 바쁜 병과 연구소에서 일 중독에 걸려 살고 있는 아들이 안쓰러워 그러려니 하면서도 “왜?” 하고 물었다. 필리핀 여행이 잡혔다고 한다. 몇 해 휴가 한 번을 못 가서 이번 설에 휴가를 냈다고 한다. 속으로는 너도 쉬면서 일해야지 잘했다고 하면서 “올 설에도 세배를 다닐 거니?” 하고 물으니 “친구들이 하나둘 장가를 들어 가족이 생기니 시간을 맘대로 내기가 어렵고 같이 모여 세배 다니는 일은 더 어려워졌어요” 한다.

참 기특한 일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해마다 큰애 친구들이 모여서 집집마다 부모님께 세배를 하러 다녔다. 설 음식을 하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작은 설에 일곱 명의 아들 친구들이 찾아와 세배를 했다. 이런 날은 점심을 대접하고 덕담을 나누었는데 아이들의 형편상 이제 세배를 다니지 못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큰애는 이번 설 연휴에 여행을 하며 쉬고 싶어 하여 이참에 응원해주어야지 하면서도 작은애한테는 살짝 “우리에게는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저만 여행을 간다냐?” 하고 서운한 표정을 지으니 털털한 작은애가 “엄마 우리도 여름방학 때 가죠 뭐” 한다. 그래도 설은 쇠고 놀러 간다 하니 참 다행이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명절 해외여행이 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친척, 고향이라는 개념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물론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니 명절 의미가 그리 크지 않는 것 같다. 설을 쇠는 방법도 나름대로 방식들이 있고 신식으로 알아서들 잘 하겠지만 아직 구식인 나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설날은 옛날 그날인데 어째서 옛날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건지. 설날에는 하는 놀이도 많다. 민속놀이도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우리의 미풍양속이기에 옛 고향에서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연날리기, 쥐불놀이, 윷놀이를 하였다. 이제는 이런 설날에 즐겼던 모습들이 스마트폰 게임에 밀려 슬슬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이번 설엔 상금을 걸어 놓고 조카들과 윷놀이를 해야겠다. 그 옛날의 고향 설 풍경을 한껏 느끼고 싶다.

설날을 너무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어온다. 몇 해 동안 내 마음속에 무의미했던 설날을 이제는 따스하게 보내고 싶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