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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끔은 이런 휴식도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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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06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우리나라 겨울 날씨가 왜 이리 변했느냐고들 한다. 입춘이 지났는데 무서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일주일 이상 내리 춥다가 하루 이틀 포근하고 다시 추워진다. 이런 이상기온으로 인해 한 달 이상을 감기와 싸우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따뜻한 봄날이 벌써 그리워진다. 제발 이번 설에는 춥지 않기를 바라본다.

살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이유로 계획이 어긋나는 일이 가끔 생긴다. 최근 들어 두 번째다. 지난번 해외여행 때는 함께 가기로 했던 두 명이 독감에 걸려 여행 당일 취소를 해서 후배와 둘만 다녀왔다. 지난주에는 넷째 언니네 가족과 모이기로 했는데 어린아이들이 있는 조카들은 한파에 움직이기 힘들고, 딸아이들은 감기에 걸려 모임을 연기하자는 의견들이 가족 톡에 올라왔다. 이미 리조트 예약은 되어 있고, 시간도 내어 뒀으니 언니와 둘이서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리조트에서 뒹굴며 보내는 것에 만족하지만 운동 중독에 걸린 언니는 한편으로 나와의 여행이 별로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는 둘만 가는 여행이니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리조트에서 사서 먹고 홀가분하게 보내자고 했다. 여행가서도 남편, 손자들, 거기에 우리식구들 뒤치다꺼리도 늘 언니 몫이라 나도 적극 찬성했다.

주말 한파에 리조트 내부 온도는 21도를 넘지 않았다. 중앙난방이라 온도를 조정할 수 없어 낮에도 이불을 덮고 있어야 했다. 따뜻한 집 두고 여기서 뭔 짓이냐고 투덜거리면서 언니도 나도 추우니 집으로 다시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언니는 “뭐하고 놀까?”하는 말을 몇 분에 한 번씩 내뱉고는 하였다. 막상 둘만 오니 뭔가 허전했던 모양이다.

바쁜 일상에 지치면 나는 꼼짝 않고 집에서 뒹구는 것이 휴식이다. 이것은 어린시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철이 들고부터는 누구랑 어울려서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책을 보거나 혼자 마당에서 돌치기,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아도 심심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대처로 공부하러 나간 언니가 돌아왔다. 특히 긴긴 겨울밤이면 언니와 나, 작은오빠 할머니와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다. 언니가 들려주는 무협소설을 듣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언니가 대처에서 읽었던 소설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면 창호지를 바른 방문으로 긴 감나무 그림자가 드리워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다. 언니의 소설 이야기가 끝나면 그 뒷이야기를 상상 하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내 유년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밤 추억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언니와의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는 끝임 없이 웃고 떠들고 영화이야기, 책이야기, 고향사람들의 최근 소식 등 지칠 줄 모르고 나누었다. 아침에는 창 넓은 거실에서 커피 잔을 들고 멀리 나갔다 들어오는 바다를 맞이하고 저녁이면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파도가 자장가를 들려주고, 오랫동안 그 파도소리에 심취해 언니와 나는 대화를 잠깐 멈추고는 했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자식을 만나는 횟수보다 형제자매를 만나면서 의지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시어머님만 하여도 멀리 있는 우리보다는 가까이 사시는 시이모님과 훨씬 더 자주 만나면서 살고 계신다. 어머니 말씀이 예전에는 당신이 이모님을 돌봤는데 지금은 이모님이 손발이 되어 주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래서 늘 이모님이 고맙다.

2박 3일의 리조트여행은 여유롭고 한가했다. 연일 터지는 어지러운 뉴스를 듣지 않아서 좋았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점을 벗어나 멍 때리며 보낼 수 있어서 잊지 못할 휴가가 되었다. 어쩌면 언니와 나도 아이들과 남편이 메워주지 못한 허전한 부분을 채워주며 황혼의 길동무로 살아갈지 모른다. 우리의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늘 그리운 엄마와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말이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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