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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여행의 여백을 누리다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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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04 17: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그 사람은, 가족 부양하느라, 자식 교육 시키느라,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 자식들 효도 받으며 편안하게 살만해 졌는데, 건강을 잃어 그동안 번 돈을 병원에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 하나 오롯이 돌볼 새 없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제대로 쉬지 못했던 우리네 부모 세대들이 공통으로 겪는 아픔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광고 카피가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무한 경쟁시대에서 앞만 보고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깊이 파고 든 문장이다. 휴식은, 활력의 근원이고, 창의력의 원천이다. 잠시라도 휴식하며 삶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지라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이다.

물론 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쉬려면 어색하고 불안할 수 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공부하는 노하우를 터득하듯이, 쉬는 것도 연습과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물론 쉬고 싶고 훌쩍 떠나고 싶어도 여러 가지 제약으로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난 겨울방학에 5박 7일 일정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다녀왔다. 인천국제공항은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좋아지며 큰 부담 없이 해외여행에 나서지 않나 싶다. 또, 국내 관광 비용도 만만치 않은 편이라, 같은 값이라면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텔레비전의 해외여행 프로그램도 해외여행의 대중화에 한 몫 하고 있다. tvN의 ‘짠내투어’와 ‘윤식당2’를 비롯하여 KBS의 ‘배틀트립’이나 MBC의 ‘오지의 마법사’, SBS의 ‘싱글와이프’, JTBC의 ‘뭉쳐야 뜬다’가 그러하다. 세계의 다양한 도시를 둘러보는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배낭 여행자의 체험기인 EBS의 ‘세계 테마 기행’ 같은 여행 다큐멘터리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말로만 듣던 ‘향기로운 항구’라 불리는 홍콩(香港)에 첫발을 내디뎠다. 100여 년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어서 그런지 유럽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길거리에 즐비한 빨강색 택시와 2층 버스, 산 정상까지 들어선 주택과 아파트, 빼곡히 들어선 빌딩과 빌딩을 쭉 연결한 육교도 인상 깊었다.

홍콩에서 이틀간 머물며 유일하게 빅토리아 피크에만 다녀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홍콩의 전경과 야경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한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이곳저곳 많이 다녀야 가성비[價性比] 높은 여행을 한다고 생각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본 것이 많아 이야깃거리도 풍족했다.

그러나 필자의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일행에 나이 어린 외손자가 합류하면서, 여행 형태가 바뀌었다. 그냥 지나치거나 놓치게 되더라도, 관광보다는 휴식에 방점을 둔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귀국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홍콩에서 고속페리로 50분 걸려 도착한 동양의 라스베가스 ‘마카오(MACAO)’에서 이러한 여백이 있는 여행을 흠씬 누렸다. 450년간 포르투갈 통치를 받았던 마카오에는, 서울 종로구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30여 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웬만하면 걸어서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일간 세나도 광장과 성바울 성당 그리고 몬테요새 정도만 둘러보았다.

그렇다고 빈둥거리며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다. 호텔마다 무료로 제공하는 셔틀버스도 이용해 보고, 마카오의 명물이라는 ‘에그타르트’와 ‘육포’도 맛 봤다. 카지노 주변의 화려한 명품관도 눈요기했다. 여러 호텔에 전시된 조형물을 비롯하여 베네치안 호텔의 인공하늘과 시티오브드림 호텔의 초대형 수중 오락쇼인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를 관람하며 낯선 문화도 체험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홍콩과 마카오에서의 풍경과 여정이 자꾸만 떠오르고 되새겨진다. 미국의 휴스턴에서 키웨스트까지 운전하다가 아파트와 상가마다 걸린 성조기를 보고, 1학년 입학생들의 첫 수업을 4년째 현충원 참배로 시작하고 있다. 학부모 독서회원님들과 다녀온 군산 경암동철길에서 옛날 과자 파는 모습을 보고, 교장실에 비슷한 종류의 간식코너를 마련하여 학생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연히 펼친 여행 가이드북에서 벤치마킹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책의 옆면이 다른 색깔로 편집되어, 책을 펼치지 않아도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챕터[chapter]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잖아도 조만간 제작할 학교 교지[校紙]의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고 싶었는데…, 여행과 휴식의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그냥 지나쳐 간 듯 했지만, 여행하며 보고 들었던 체험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학교 경영에 새로이 투영되리라 본다.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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