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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겨울나기 회상(回想)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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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30 17: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이름은 별이. 강아지입니다. 까만 눈동자가 어찌나 초롱한지 여간 영리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지요. 현관문을 열면 별이가 먼저 나가려고 서두릅니다. 요새는 날이 너무 추워서 산책한번 시키지 않고 집안에만 가두었더니 몸살이 나는 가 봅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습니다. 이 추위에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군불을 지피려고 가마솥 앞에 앉아봅니다. 가마솥에 담겨진 물도 꽁꽁 얼었습니다. 문이 살짝 열렸는지 어느새 따라 나온 별이는 이리 저리 뜀박질에 춥지도 않나 봅니다. 뛰다 다시 와서 재롱을 떨고 바짓가랑이를 당기는가 하면 불쏘시개에 불이 붙어 온기가 전해지니 바닥에 앉아 바라보는 모습이 앙증스럽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따뜻함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귀엽습니다. 장작을 지펴놓고 방으로 들어오려다 별이 목욕시키는 일을 하나 더 만들었지만 귀여운 모습에 불이 거의 사윌 때까지 앉아있었습니다.

지금은 화목보일러 설치가 되어있는 집은 나무를 때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온 마을이 땔나무를 준비하는 것이 겨울나기를 위한 큰일이었습니다. 소유한 산이 있거나 말림이라도 있는 집은 쌓아 놓고 때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땔나무를 준비하는 일이 겨울나기의 큰일이었지요. 어른들은 높은 산까지 올라 솔새나 갈나무들로 집채 만큼씩 지고 왔습니다. 땔나무의 준비는 겨울 한 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어정칠월이 되면 산골마을은 벌써 겨울채비를 하였답니다. 칠월비라고 해서 오뉴월에 잘 자란 풋나무들을 베어서 산에서 말리는데 일꾼을 얻어 며칠씩 산비탈을 깎았다고 합니다. 잘 마르면 지게로 져다 짐으로 쌓아 놓은 것이 산더미만 해야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요. 미처 칠월비를 준비하지 못한 집에서는 겨우내 땔나무 때문에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카시 나무를 많이 해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잘 자란 참나무를 베어서 장작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이 때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무를 하러 가시면 우린 졸졸 따라가기도 하였습니다. 눈이 녹고 양지바른 곳이나 편설이 드문드문 남은 곳에서 고주박을 줍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도 가지를 잘라서 기묘한 모양의 나뭇등걸이 되었지요. 이 고주박은 할아버지께서 한 소쿠리 지고 오셨습니다. 고주박은 다른 나무보다 잘 말라 있어서 가볍지요. 용도는 쇠죽을 쑤거나 군불을 지피는 데 쓰였습니다. 최고로 좋은 땔감입니다.

땔감이 이 뿐이겠습니까? 볏짚은 물론, 고추 대, 담뱃대, 깻짚 등 농업부산물도 좋은 재료였지요. 가을에 방아를 찧으면 쌀과 겨는 물론 왕겨도 착실히 챙겨옵니다. 겨는 소의 귀중한 영양식으로 좋고 왕겨는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지요. 왕겨를 피우려면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작은 풍구에 송풍구를 달아 바람을 불어줘야 왕겨가 핍니다. 아궁이 풍구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궁이 풍구를 쓰지 않았어도 벌써 군불은 다 사위어 가니 등허리가 서늘해져 오네요. 별이와 얼른 방에 들어가야겠습니다. 별이와 함께 지내는 엄동설한은 군불보다도 더 따뜻한 겨울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절절 끓는 아랫목에 발을 묻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온몸에 땀이 촉촉이 올라오네요. 별이 덕분에 옛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요?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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