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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자유로움과 절제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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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25 17: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음악이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을 매우 많이 따르기에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더라도 듣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을 들을 수 있고, 제각각 받아들이는 감정의 온도차가 있기 때문에 장소나 상황에 따라서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며,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늘 그러한 연주를 듣고 왔다. 조성진의 첫 전국 투어 리사이틀의 마지막 연주.

2015년 그가 쇼팽 콩쿠르를 석권했던 해는 마치 국가적으로도 큰 경사를 맞이한 것처럼 축제 분위기였다. 클래식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거니와 아닌 사람들까지도 이 사실에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국가 타이틀을 건 1위라는 기록에 너도 나도 흥분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가 불어다 준 클래식 음악의 뜨거운 바람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 사실 살짝 의구심은 들었었다.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체감은 거장이 된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의 연주의 특징은 무엇일까. 연주를 잘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인위적인 욕심이나, 지나치게 깊은 해석, 그것으로 인한 변질, 고집스러운 면모로 인한 독특한 개성 등이 연주보다는 연주자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연주에서는 뭐랄까 극도의 자연스러움과 몰입이 돋보인다. 그는 인터뷰에서 언제나 배움의 자리에 서 있음을 얘기하고, 시간의 익음으로써 얻는 깊이의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러한 그의 성향이 연주에 잘 묻어나는 듯하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전반부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과 30번, 그리고 후반부 드뷔시 '영상'의 작품들과 쇼팽 소나타 3번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도이치그라마폰과 발매한 최근 앨범인 드뷔시 작품들에 대한 더욱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갈 프로그램 선정을 기대했었는데, 아마도 전국의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여서 그러했는지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정했다.

그의 베토벤 연주는 기존의 해석을 뒤엎는다기보다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을 연주에 담아내고 있었다. 매우 절제하면서도 그 안에서의 선율이 나직하고도 굵직하게 펼쳐졌는데, 평소 베토벤을 생각하는 무게나 호흡에 변화가 있다면 이렇게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의 전환을 주었다. 그 점이 20대 초반의 젊은 조성진이 줄 수 있는 베토벤의 메시지이겠다는 생각을. 아마도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본인의 연주 지속적인 변화를 들려줄 생각인 것 같다. 아주 기대되는 부분이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베토벤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연주를 염려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 그의 소리는 쇼팽은 두말 할 나위 없고,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에 어울린다고 스스로가 말한다. 앞으로 브람스의 소리도 잘 내어보고 싶다면서 체중을 늘려보겠다는 얘기도 기사를 통해 보았다. 이토록 소리와 소리를 낼 수 있는 때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지함과 연주에 대한 신뢰를 느낀다.

마지막 쇼팽 소나타 3번에서 그는 모든 에너지를 다 보여주는 듯 했다.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소리에 매료되었던 드뷔시 '영상'을 연주할 때와는 다르게, 건반 위를 활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지에 오른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피아니스트 자체를, 작품과 몰아일체가 되어 유려함과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쇼팽과 조성진은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인 듯하다. 그가 연주하는 쇼팽의 사운드는 어떤 해석이나 분석이 들어갈 여지없이 매우 자연스럽다.

앵콜곡으로 슈베르트와 쇼팽의 작품들을 연주하고는 마지막으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했는데, 그의 기교적인 면과 연주의 다이내믹한 힘, 그리고 화려함과 무대의 장악력까지 한 번에 관객들에게 선사하였다. 마치, 쇼팽이 생전에 리스트와 늘 비교되며 겉으로 드러난 병약하고 섬세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는 마지막에 리스트의 작품으로 연주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떠났다.

자유로움과 절제로 무대를 휘어잡은 그의 연주에 객석의 환호성은 장내를 가득 채웠다. 연주 전, 후로 관객들은 그와 만나기 위해 기꺼이 기다림을 택했다. 시종일관 기품을 잃지 않았던 연주, 흔들리지 않았던 연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연주, 그리고 기존과 다른 또 다른 매력이 청중을 압도하는 힘, 벌써부터 그가 다음에 무엇을 들려줄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위대한 연주자와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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