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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견공(犬公) 같은 사람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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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21 15:3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사회가 어수선하다. 가야할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은데 서로 물고 뜯고, 불신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한 단면이다. 한 때는 주군 옆에서 최대의 수혜를 보았음직한 사람이 처지가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공허하다. 오늘의 난국을 후세의 사학자들은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해진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지만 누구나 공과가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는 신의를 저버리고 은혜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다. 항간에는 사람답지 못하게 처신하는 사람을 두고 ‘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느 동물보다도 사람을 따르고 순종하며 어김없이 의리를 지키는 충직한 동물이 바로 개라고 할 때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개만큼도 은혜를 모르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욕을 하려거든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바꾸어 말해야 옳을 것이다.

여러 동물들 중 개는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다. 우리 문화에서 주인에게 복종하는 충복의 이미지가 강해 집지키는 일은 물론이며, 어려움에 처한 주인을 기적처럼 구해낸 미담도 전해지고 있는 영물이다. 그렇기에 새해가 되면 잡귀를 막는 용도로 대문에 붙이는 그림인 ‘문배도’에 개 그림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개에 대한 비하 또한 만만치 않다. “개만도 못한…”이라며 개를 원천적 비하대상으로 여기거나 개판, 개소리, 개털 등 개를 빗대서 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요즘 청소년들은 아무 말에나 앞에 ‘개’자를 붙여 그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접두사로 개자를 붙여 부정적인 의미를 더욱 강하게 하는가 하면 긍정적인 곳에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억지로 그 어감을 강조하는 언어파괴의 경우도 있다.

22년 전에 상영된 ‘개 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 서민아파트촌에서 아내를 상습 구타하는 한 남자를 동네 여인들이 혼내주려다 남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남성위주사회에 맞서고자 일어선 여성들의 반란과 항변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건이 일어났던 무더운 여름날의 그 오후가 ‘개 같은 날’이었는지는 몰라도 궂이 개를 비유해서 표현하려 했다면 이것 역시 ‘개 같은 날’이 아닌 ‘개만도 못한 날’로 바꿔야 말이 되지 않을까.

개는 사람이 잘 먹이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면 ‘아, 이 사람은 신이구나’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양이를 잘 먹이고 귀여워해 주면 고양이는 ‘아, 내가 신이구나’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하여 자신의 분수를 알고 신의를 지키는 동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젠가 조간신문에서 개 사진 두 컷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휴대전화로 주인을 구한 개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개 사진이다. 목에 훈장을 걸고 있는 개의 당당한 모습이 이색지고,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또 다른 개의 모습이 훈훈하다.

어느 날 미국 911 구호센터에 긴급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멍멍 개 짖는 소리만이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급박한 상황임을 직감한 근무자가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여 구급차를 출동시켰다. 현장에는 남자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던 개 주인이 갑자기 혈당수치가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는 개 덕분에 인근병원으로 옮겨져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벨’이라는 이름의 이 개는 주인이 쓰러지자 즉시 휴대전화를 걸었다. 주인이 평소 911에 연결되도록 단축키를 설정해 놓고 위급상황 때에 이빨로 누르도록 훈련시켜 놓은 덕분이었다. 견공이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로 ‘벨’은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인명을 구하거나 범죄를 예방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사마리안’ 상을 받았다. 사람이 아닌 동물로서 이 상의 영예로운 첫 수상견(受賞犬)이 된 것이다.

중국 산시성 지역의 한 동물원에는 위급한 상황에 놓인 새끼 호랑이가 있다. 까닭 없이 어미에게 버림받아 굶어죽을 위기에 놓인 호랑이다. 사육사는 고심하다가 아기 호랑이가 어미 개의 젖을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개 젖은 호랑이 젖과 영양성분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어미 개는 순순히 새끼 호랑이에게 자신의 젖꼭지를 물렸다. 견공이 강아지와 새끼 호랑이에게 나란히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평온하면서도 훈훈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강원도 양양군의 한 민가에서도 어미 개가 새끼 멧돼지와 산책을 하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발발이 개는 한 달 전부터 어미를 잃은 야생 새끼 멧돼지를 돌보고 있다. 산책길에 나서서 앞장서 가던 어미 개가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새끼 멧돼지를 돌아보는 모습이 정겹고 그윽하다. 마음을 열고 이웃에 대해 베품의 참된 가치를 실현하는 개들의 지혜와 덕성이 자못 감동을 자아낸다. 개들이 삭막한 인간 세상에 던지는 휴머니즘적인 자선의 메시지 앞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비운의 그림자를 항상 달고 다니는 처지이면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주인을 신처럼 섬기며 신의와 충성심을 바치는 개를 본다. 또 ‘고양이의 사고’를 가지고 독존과 자만에 젖어 처신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이 사회에는 ‘견공(犬公)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서로 믿고 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자못 무술년의 의미를 크게 떠 올리게 한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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