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요세평] 초등학교에 빈 교실은 있을 수 없다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12.27 16: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다난다사(多難多事)했다고 기억될 정유년(丁酉年)이 막 저물어가는 요즈음, 교육계의 화두는 ‘비어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실’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활용하겠다는 뉴스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이러한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결되어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의 좋은 정책이 교육계의 반발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는 일부 여론도 있지만, 교육계의 의견 수렴 없이 탁상행정과 밀어붙이기 행정이 우려되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문제는 먼저 학교의 실정을 파악한 다음에 논의했어야 한다. 우리나라 어느 초등학교에 가 봐도 비어 있는 교실(유휴교실)은 없다.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여 한 교실에서 50∼60명이 공부했던 1980∼90년대 이전까지의 콩나물 교실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감소되어 콩나물 교실이 해결되고 교실 사정에 여유가 생긴다면 우선적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모색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초등 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학생 수가 줄었으니 그 만큼 빈 교실이 있을 것이라는 인구통계학적 논리로 유휴교실을 이야기하는 데 실제 학교현장은 그렇지 않다. 설령 여유교실이 생긴다면, 뭉뚱그려져 있는 초등학교의 특별실을 세분화해야 한다. 음악실로 뭉뚱그려진 특별실을 국악실·합주실·타악기실·합창실 등으로 분리해야 한다. 미술실도 마찬가지이다. 크래파스나 그림물감을 사용하는 수채화실, 먹과 벼루·붓을 사용하는 수묵화실 등으로 세분화된 공간이 필요하다. 과학실, 체육실, 요리·목공을 위한 실과실 등도 마찬가지로 전문적 기준으로 세분화해야 할 꼭 필요한 공간이다.

이렇게 특성화되고 세분화된 공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실사정이 허락되지 못하여 최소한의 공간으로 뭉뚱그려진 특별교실이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탁상공론으로 학생 수가 줄고 있으니 초등학교에 빈 교실이 생길 것이고, 그 곳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활용하면 되겠다고 상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교실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초등학생들이 마음껏 체험하고 활동할 수 있는 세분화된 특별교실 확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저출산 문제나 유아 보육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에는 얼마든지 공감한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법적 근거나 목적을 달리하는 어린이집 차원의 시설을 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법을 개정할 때에는, 초등교육과 유아교육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기에, 반드시 초등 및 유아 등 교육 현장의 의견 수렴이 있어야 했다.

초등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영·유아의 보육을 위한 시설인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너무 쉽게 예상된다. 어린이집의 영·유아는 보통 차량을 이용하여 등·하원하게 된다. 초등학생의 등·하교와 영·유아의 등·하원 문제에 따른 안전 문제가 대두된다. 영·유아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 초등학생의 수업권 침해 문제, 학부모 출입 통제의 문제, 학교 시설·운동장 등의 시설 공유와 사용상의 문제, 교육과 보육의 근원적인 차이에 따른 상호 쟁점 발생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초등학교 교장이 교육법 근거 하에서 동일한 체계로 관리·운영하고 있는 병설유치원과는 또 다른 상황이 발생된다. 하나의 시설에 초등학교장과 어린이집 원장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시설물 관리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가뜩이나 방과후교실이나 초등돌봄교실 등으로 학교가 어수선한데, 보육시설인 어린이집까지 들어선다면 예상하지 못한 혼란과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 당국에서는 초등교육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복지부는 해당 법안은 어디까지나 유휴교실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빈 교실에 설치할 때는 사전에 시·도 교육감과 학교장의 동의를 얻도록 할 계획이어서 교육부장관이나 시도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향후 계속 어린이집 편향 법률안 추진을 계속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어느 초등학교에도 빈 교실(유휴교실)은 없다. 만약 빈 교실이 방치되어 있다면 그 학교는 학교장이 효율적인 학교경영 측면에서 직무유기했을 소지가 다분하다. 필자 학교의 경우 음악 관련 특별교실을 확충하고 싶은데 언감생심 꿈꿀 수조차 없다. 당장 내년에 돌봄교실을 하나 더 확충해야 하기에 특별교실은 또 뒤로 밀린다. 초등학교에 여유 교실도 없지만, 설령 생긴다고 할 때에는 내실 있고 심도 있는 초등교육을 위해 세분화되고 특성화된 특별교실 확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초등학교에 빈 교실은 있을 수 없다!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