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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서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단·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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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06 16:3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목요세평]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서

12월이다. 영어 December는 사실 10을 뜻하는 라틴어 Decem에서 유래한다. 단어만의 의미를 엄밀히 따지자면 December는 10번째 달이지만 우리는 12번째 달로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율리우스나 그레고리우스를 들어가며 지금 여기에서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2017년의 12월이 시작되었으며 그 12월의 몇 번째 되지 않는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한 해의 마감은 저 앞에, 목요세평 원고마감은 바로 턱 밑까지 차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옷을 주워 입고 겨울의 칙칙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눈길을 조심조심 운전하며 연구실로 갔다.

며칠 전, 죽마고우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독일에서 이민자 내지는 이방인으로 살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굴생김하며, 유창한 한국어로 봐서는 우리와 다를 게 없지만 사실 그에게 이곳은 또 다른 나라가 되어 있었다.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울었다”고 하지만 그가 다시 돌아온 고향은 그때처럼 아늑하고 푸근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게 변해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고향의 음식 맛이라고 했다. 칼국수가 먹고 싶다 길래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젊은 두 엄마와 아이들 셋이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그들에게 시선이 갔는데 두 엄마는 수다를 떠느라, 세 아이는 코라도 박을 듯 스마트폰을 얼굴 가까이 대고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움찔하였다. “저게 우리의 일상이고 현실이고 아주 자연스런 일이야. 너도 앞으로 무감각해 질 거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세상의 모든 것은 액체처럼 끊임없이 흐른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유동성은 동양의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긍정의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서양의 근대사회를 견인하고 유지했던 구조·제도·풍속·도덕의 견고함은 21세기에 들어서 액체처럼 무형이 되고 불확실해졌고 그런 유동성의 세계에 인간이 내몰려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는 도태되고, 배제된다.

이 시대는 이제 사냥꾼의 시대가 되어버렸으며 사냥꾼과 사냥감이라는 두 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사냥꾼을 선택하고 그 나머지는 사냥꾼으로 내몰린다. 다수의 사냥꾼들은 소수의 사냥감을 찾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을 사람들과 공간이 필요해졌다. 스마트폰과 SNS는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현실의 부족함을 가상의 현실에서 찾으려 한다. 지난 세기말까지만 해도 가상현실의 접속은 한석규와 전도현을 현실세계로까지 이끌어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더욱 가상적인 것이 되고, 소통은 풍요로움 가운데 빈곤만 가중된다.

바우만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청소년은 하루 평균 100건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매 10분에 한 번 문자를 보내는 셈이다. 우리의 주변도 이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SNS를 통한 빈번한 소통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기고 거기에 매달린 채 혼자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생각과 꿈, 걱정, 희망, 같은 것은 고민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SNS라는 네트워크가 일시에 끊기게 되면 그 금단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 홀로 남겨짐, 즉 고독은 인간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바우만은 현대의 유동성으로 인하여 그러한 고독을 경험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고 역설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여행을 떠났지만 이제 바우만은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서 떠날 때라고 말한다. 고독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버리는 것은 자기만의 방에서 사색의 기회를 잃는 것이다.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할뿐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어느새 12월이며 세밑이다. 한해가 다 갈 때쯤이면 왠지 모를 외로움, 고독감이 다른 때보다 더 밀려온다. 그러나 그 고독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고 하늘에는 영광과 땅에가 평화가 올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기다림 시기인 것이다.

오랜 만에 조르주 무스타키의 LP 가운데 ‘나의 고독과 함께 avec ma solitude’ 라는 노래에 바늘을 걸어본다.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단·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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