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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빛나는 조연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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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05 16: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올 한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일찌감치 첫눈이 내리고 추위가 오니 들꽃들도 황량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른 봄 예쁘고 앙증맞은 새싹부터 가을 해국과 용담꽃까지 피고 졌으니 여름내 풀과 씨름했던 고달픈 시간들이 보람된 일상이었다고 마무리되어진다.
 
그래도 가으내까지 들꽃들의 피는 모습을 영상에 담는 이들이 있었고 풀과 씨름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차 한 잔 같이 마셔주는 여유를 보여준 이들도 있었다. 봄부터 늦가을 동안은 당연 들꽃이 주연이다. 그런데 그 주연인 들꽃을 빛내주었던 것은 또 다른 조연들이 있었다. 
 
새벽부터 물레나물의 환상적인 꽃술을 즐겨 찾는 꽃등에, 저녁새참 들꽃 밭을 선회하며 군무를 보여주는 잠자리 떼, 배가 아픈지 냉초를 즐겨 찾는 배추흰나비, 어스름 저녁에 용담의 꽃을 찾아오는 박각시는 물론 작은 무당벌레에서 메뚜기와 항가치까지 계절과 시간별로 들꽃을 찾아주는 조연들이다. 
 
들꽃에게 쏟았던 나의 정성은 키가 너무 자랄까 거름도 주지 않았고, 벌레를 잡으려 농약을 치지 않았고 그저 잡초만 뽑아주는 일이었는데 곤충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을 게다.
 
벌과 나비는 꽃잎에 앉아 꿀주머니를 뒤지고 박각시는 긴 주둥이를 꽃잎 깊숙이 꽂아 넣고 멋진 비행솜씨를 뽐내며 식사를 했다. 사마귀는 들꽃의 그늘에 숨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비와 잠자리들을 기다리고, 어둠을 즐기며 식사는 주로 밤참으로 해결하고 들꽃들은 이렇듯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겨우 풀 뽑아 주는 일도 힘들어 했으니 들꽃 위를 누비는 꽃등에만한 역할도 못한 것 같다. 잡풀 뽑는 일이 어찌 꽃들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중한 역할과 비교될 수 있겠나. 사실 정성이기보다는 게으른 탓에 소독약도 비료도 주지 않은 것이 곤충들에게는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았다. 덕분에 주연인 들꽃을 소재로 보잘 것 없는 글도 몇 편 써서 동인지에 실었다.
 
올해로 15집을 내는 동인지 제호는 ‘잉홀’이다. 수필문학회 회원들의 글을 모아 엮은 동인지다. 음성에는 무영회, 풋내들, 창작교실이란 동인회가 만들어져 활동했었다. 개구리는 땅에서 매미는 나무에서 각자가 부르는 노래는 같은 목적의 노래지만 두 목소리가 어울리면 듣기 거북할 수도 있기에 10년 전 음성의 수필문우들은 서로 합심하여 음성수필문학회 동인회를 만들어 한곳으로 모였다. 물론 그전에 무영회에서 발간했던 잉홀이란 동인지를 합하여 15집이 되는 해이다. 잉홀은 무영회에서 배려하여 얻은 제호이다. 
 
수필은 체험을 통한 의미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스승님의 말씀처럼 문득 허물은 곤충만 벗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나를 버려야 새로운 내가 찾아지듯 고정관념을 버려야 창작의 허물벗기도 이루어지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들꽃들도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서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고 어렵사리 발아된 여린 싹을 기르고 시련을 이겨내야 꽃눈이 만들어진다. 꽃대를 올려 봉오리를 터뜨리고 벌과 나비에게 공양을 하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고 꽃이 피어 꽃잎을 떨어뜨리고 나면 씨앗을 보듬은 열매가 맺힌다. 그렇다 ‘잉홀’이란 동인지도 저 혼자 피고 지고 열매를 맺었을까. 이렇듯 ‘잉홀’이란 한권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필문우들과 지도하시는 스승님 같은 빛나는 조연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에는 알을 낳기 위하여 49일의 인고의 시간을 견딘다. 그동안 네 번의 허물을 벗고 1.5km길이의 명주실을 토하여 고치를 짓고, 그 질긴 고치를 뚫고 나방이 된다. 
 
매미는 일주일의 하늘보기를 위하여 적게는 6년에서 많게는 15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우리 회원들도 벌써 15번째 허물을 벗었으니 더 힘든 허물벗기를 준비하려면 자양분이 많은 먹이가 더 필요하겠지. 그러다보면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음성수필문학의 메카가 될 것이다. 
 
단풍진 낙엽이 아직 들꽃 행세를 하고 있다. 곤충들은 내년 봄의 날갯짓을 위하여 허둥지둥 서두르지 않고 추운 바람과 눈을 피하려 자기들만의 은신처를 만들어서 기를 받고 있거나 알집을 만들어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무시로 얼굴을 내미는 들꽃들을 위하여 성품 좋고 부지런한 조연들은 잔치를 벌여야 하니까. 이 해가 가기 전 잉홀 출간기념식도 갖는다.
 
차금한 오늘, 조연들의 빛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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